한국일보

아일랜드와 성 패트릭

2012-04-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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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기독교의 선교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명제는 역사 자체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바울의 선교의 방향이 동행(東行)하지 않고 서행(西行)함으로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구 기독교 문명이 세계 역사를 주도하게 된 것처럼 기독교 선교가 들어가는 곳마다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기독교의 선교는 세계 역사의 흐름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다. 한 국가와 민족의 역사도 바꾸어 놓았다. 가장 모범적인 예는 아일랜드이고 그 당사자는 아일랜드의 선교의 아버지인 성 패트릭(St. Patrick)이다. 패트릭은 5세기 초 그의 나이 44세가 되던 해에 그의 조국 영국을 떠나 아일랜드에 들어와 26년 동안 선교 사역을 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700개의 교회와 수많은 신학교를 세워 1,000여 명의 목회자를 배출하였다. 또한 마을마다 학교를 세워 무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고아원을 세워 약한 자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 노예에게 자유를 허락했을 뿐 아니라 노예 제도를 폐지하여 화해와 치유의 선교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파장과 영향력은 엄청났다. 전 국민의 1/3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우상 숭배와 야만성과 무지함으로 충일했던 바이킹 해적의 섬이 지식과 지혜와 문화와 문명을 아는 우량 민족이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화해와 단결을 모르고 배타적으로 대립되어 왔던 150여 개에 이르는 다문화 종족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기적을 가져왔다. 그 결과로 영국을 위시한 유럽의 열강과 어깨를 겨루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 뿐 아니다. 아일랜드는 세계적인 지도자를 수없이 배출하여 인류 역사에 공헌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 레이건, 클린턴, 이들 모두가 아일랜드 출신이다.패트릭이 죽은 지 1550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성 패트릭의 이름은 아일랜드의 국민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궁금하다. 영국인이었던 패트릭이 어떤 계기로 해서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의 선교사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패트릭은 주후 385년경 영국 동북부 지역에서 켈트족의 후예로 태어났다. 16세가 될 때 까지 그는 지독한 말썽꾸러기요 문제아였다. 그런데 그가 16세가 되던 해에 인생의 큰 위기이자 변화가 다가왔다. 당시 바이킹 야만족이었던 아일랜드 해적이 북 영국을 침략하여 많은 사람과 재물을 노략할 때 소년 패트릭도 그 무리 가운데 섞여 끌려가게 된 것이다.
그는 무려 6년 동안이나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소와 함께 자고 일어나는 고독한 삶을 살았다. 패트릭은 이렇게 거칠고 외로운 들판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사막의 교부 안토니우스와 같은 영성인이 되었다.

어느 날 그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일어났다. “원수의 나라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화해와 치유의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패트릭과 아일랜드는 이렇게 해서 인연이 맺어졌다. 악연이 축복이 된 셈이다.
원수의 나라 아일랜드를 용서와 사랑으로 덮고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패트릭의 선교정신이 마음에 문득 새롭다. 당신은 리더인가. 패트릭을 본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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