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응어리를 풀고 살자

2012-04-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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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지난 2일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시 오이코스 신학대학에서 총기난사로 7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한인 고수남씨가 체포되었다. 한인이란 말에 가슴이 내려앉는다.한 친구는 9.11 이후 무슬림을 보면 멀리 피해가던 뉴요커들이 한인 하면 총기난사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한다. 한인들은 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 한 한인 조승희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사회가 개인의 범죄를 소수인종이나 민족 집단 전체로 확대 연관시키지 않고 한인사회도 굳이 자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래도 타인종이라면 무관심할 수도 있지만 한인이라면 우리 일이 된다. 화를 다스리지 못해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 이도 불쌍하지만 아무 죄 없이 죽은 희생자들의 사연이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어렵게 이민 와서 간호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얻기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열심히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가던 이들이었다.


미국에 이민 올 때는 다들 비행기속에서 부푼 가슴으로 화려한 미래를 설계하며 왔을 것이다. 소아과의사, 전문직 간호사 등 어느 누구도 구만리 같은 앞날이 순간에 무너지리라 짐작 못했을 것이다. 이 사건의 용의자처럼 가족을 연이어 잃고 이혼을 했거나 경제난에 시달리는 한인들이 많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살아도 먹고 살기 어렵다보면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뭔가 억
울한 생각이 들고 누가 그런 자신을 무시하면 화가 나고 분해서 응어리가 쌓여갈 것이다. 자신의 화를 삭히지 못해 응어리가 오래 쌓이면 울화병, 즉 홧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수필가 이규태는 한국인의 ‘응어리병’에 대해 “사람의 몸은 기와 피와 살이 맥락 조화되어 이루어졌다고 우리 선조들은 생각했다. 한데 그것이 조화돼 흐르지 않고 맺히면 기체, 혈체, 육체로 병이 생긴다. 이 흐르지 않고 맺히는 체를 응어리라고 했다. 기가 충만해서 탈출구를 못 찾을 때 ‘기가차다’고 하고 기의 유통이 단절됐을 때 ‘기가 막히다’고 하듯이 무형의 기가 외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맺혀 있을 때 응어리라고 한다. 이 응어리가 오래 풀리지 않으면 한이 되고 이 한이 사무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원이 되었던 것이다”고 말했다.언어장애, 외로움, 경제적 어려움 등 미국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이민 스트레스라는 것이 있다. 이런 스트레스들이 쌓이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면 폭발하게 된다. 소심하며 평소 온건한 성격의 사람이 어느 날 쌓인 응어리가 터지면 이런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는 빈도수가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평소 벌컥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나름대로 응어리를 해소하고 살기 때문이라 큰 위험이 없다는 말도 되겠다. 그러니 남편이나 아내나 주위에서 성을 잘 내는 사람이 있으면 “어, 저 사람 지금 응어리를 푸는 중이구나” 하고 이해하면 같이 화 낼 일도 기분 나쁠 일도 없다.평소 말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 역시 “수다로 응어리를 풀고 있구나” 하면 주책없다거나 빅마우스라고 흉볼 일도 없다.

다음은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다. “모난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은 모난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과 같다. 참 불편하다. 비뚤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은 비뚤어진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것과 같다. 참 불편하다.”
이런 말도 있어 따로 메모해 두고 가끔 읽어본다.“귀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면 귀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하찮다고 생각하고 하찮게 여기면 하찮지 않은 것이 없다. 예쁘다고 생각하고 자꾸 쳐다보면 예쁘지 않은 것이 없고 밉다고 생각하고 고개 돌리면 밉지 않은 것이 없다.”상대가 미워지면 생각을 반대로 바꿔보고 기분이 가라앉으려 하면 스스로 끌어올리자. 그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심지어 성격이 어두운 사람조차 어둡고 부정적인 사람보다는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 옆에 서고 싶어 한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응어리를 해소하려면 자신만의 비법 한 두가지는 갖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 음식, 놀이, 친구를 찾아보자, 그것이 미국에서, 세상을, 잘 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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