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난의 축복

2012-04-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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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바야흐로 ‘이스터 에그’와 ‘이스터 바니’의 계절이다. 마켓마다 알록달록 색칠한 달걀과 토끼 인형과 백합꽃이 즐비하다. 4월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성탄절이 있는 12월 못지않게 중요한 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고통 속에 죽었다가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사건을 기리는 부활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부활절 전의 40일(사순절) 동안을 예수가 겪은 수난과 죽음을 되새기며 근신한다.

예수는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줬지만 그중 9명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떠났고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에게 돌아와 감사를 표했다. 그 이유는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둥병자는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아픔을 못 느낀다. 고통을 느낀다고 함은 병이 나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인들은 지금 여러 가지 아픔을 겪고 있다. 경제적인 고통을 비롯해 이민생활에서 겪는 외로움과 소외감 등 정신적 고통이 적지 않다. 캘리포니아에서 2일 일어난 40대 한인의 충격적인 무차별 총격사건도 그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참지못해 무고한 7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가고 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만일 이 한인이 이런 사건을 저지를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면 예수에 의해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의 이야기만 알았더라도 이와같이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고난은 모두가 아픔이다. 왜 우리가 사람을 죽일만큼 마음이 고통스러워야 하는가? 우리가 겪는 아픔을 모두 우리의 잘못된 몸과 마음을 원형대로 복귀시키라는 일종의 신호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를 짓누르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인 무게로 인해 느끼는 고통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은 아픈 사람이 많아서인지 약국에서 흔히 팔리는 약이 진통제라고 한다. 조금만 몸에 통증을 느껴도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약을 찾는다. 우리 사회에서 수면제나 마약 등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아픔은 각자가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기 위해 겪는 고통이다. 그렇다고 하면 아프다는 것이 나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기쁘고 감사한 일이 아닐까?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처럼 아픔으로 말미암아 나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무수한 고초를 당하고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난 부활을 생각한다면 고난이 괴로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황무지’를 쓴 미국의 시인 T.S 엘리옷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예수가 부활해서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 새로운 복음과 구원의 희망을 준 것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4월은 겨우내 죽은 나무에 새로운 싹이 움트고, 대자연에 물과 생기가 다시 오르는 달이다. 그러므로 고통은 새로운 희망이고 축복이다.고통은 아름다움을 만든다. 조개가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내자면 오랫동안 모레속에서 고통을 참고 견뎌내야 한다. 금강산처럼 경치 좋은 산들도 그 수려함과 웅장함을 보이기까지 실로 엄청나게 긴 세월동안 고난을 겪었을 터이다.

고난이란 아름다움 뿐 아니라 감동도 준다. 성경은 2,0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베스트셀러로 온 인류에게 변함없이 읽혀진다. 그 속에 기록된 숱한 고난의 역사에서 느껴지는 감동 때문이다. 고난주간에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각자에게 닥친 고난을 어떻게 감당하고 이겨내서 아름다운 결실로 승화시킬 것인 가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고난을 겪은 자만이 더 알찬 이민의 꿈과 희망의 역사를 쓸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길은 고난의 여정이었다. 고난주간, 이들이 겪은 고난의 행보가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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