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수의 십자가 처형

2012-04-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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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금주가 기독교의 최대 명절인 ‘고난주간’이다. 목요일에 최후의 만찬이 있었고, 금요일에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집행되었으며, 주일에 예수의 부활 사건이 발생하였다. 슬픔과 기쁨이 교치되는 주간이다. 부활주일 새벽에는 세계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새벽예배가 전통이 되어있다. 예수는 자기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내 손과 발을 보라”고 하였다. 사람을 식별시키기 위해서는 얼굴을 보라는 것이 상식이지만 예수는 자기를 대표하는 모습으로 손을 들었는데 그 손에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못 자국이 있었다.

미국 언어장애자의 수화(手話)로 예수를 가리킬 때 왼쪽 손바닥에 오른 손 손가락을 찍는다. 못에 뚫린 손이 예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십자가가 장식품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실감이 안 나지만 캔사스 의과대학의 해부학 교
수 하워드 메츠키 박사는 십자가형의 고통을 의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온 체중이 두 손바닥에 박힌 못에 매달려지기 때문에 살이 찢겨 출혈과 통증이 극심하다. 근육이 극도로 팽창하여 호흡 장애를 가져온다. 숨을 내쉴 수가 없어 근육에 산소 공급이 안 되므로 심한 경련을 일으킨다. 이런 증세들을 참으려고 죄수는 몸을 위로 치켜 올리려 하는데 이때마다 체중은 발등에 꽂힌 못에 의지하므로 그 고통은 가중된다.” 예수가 달린 십자가는 이런 끔찍한 고통이었고 결코 벽장식으로 걸어 놓는 감상적인 그림은 아니었다.


예수가 스스로의 죽음을 예고하였을 때 제자 베드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항의하였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다”고 극렬한 질타를 하셨다.(마16:21-25) ‘넘어지게 한다’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스칸달론’으로서 덫을 뜻한다.(추문 혹은 불명예를 뜻하는 영어의 scandal은 여기에서 나왔다) 즉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실패시키려는 악마의 덫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책망이다.

뉴스위크지에 의하면 미국인이 악마(혹은 사단)란 말을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의 26%만이 “사단이 나를 시험한다”는 말을 인정하였으며, 개신교도 31%는 사단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부시 전 대통령이 북한을 악마의 집단이라고 말해서 화제거리가 된 일이 있다. 콜럼비아 대학의 문학 교수 앤드루 델반코 박사는 그의 저서 ‘사단의 죽음’에서 지난 100년 동안에 발생한 인간의 악마적인 죄악상 여섯 가지를 지적하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스탈린의 죽음의 캠프, 월남의 죽음의 벌판, 르완다의 집단 무덤, 보스니아의 인종 청소이다. 인간이 범한 이런 잔인무도(殘忍無道)한 일은 사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인류 역사상 빌라도만큼 욕을 많이 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장본인으로서 2000년 동안 욕을 먹고 있다. 그는 로마가 파견한 유대 지방 총독으로서 예수 재판을 주관하였다. 그의 양심은 예수의 무죄를 믿고 있었으나 제사장 장로 등 종교 지도자들에게 매수된 폭도의 아우성을 듣고 이 일이 자기의 정치 생명에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으로 발뺌을 하였다. 그는 폭도들 앞에서 손을 씻는 예식을 행하고 “나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어리석은 선언을 한 것이다. 세수한다고 죄의 2중성이 말살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도들이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고 목청을 높여 자기의 이름을 저주할 것을 빌라도가 짐작이나 하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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