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신론(有身論)

2012-03-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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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봄이다. 햇볕 몇이 파란 하늘에 하얀 밀가루를 뿌리면서 아지랑이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온몸이 노곤한 지붕이나 풀잎 돋는 뜰 위에 뽀얗게 내려앉는다. 봄이 되면 남자나 여자나 봄바람처럼 마음이 술렁이기 시작하지만 나이 들면 온몸이 노곤할 뿐 그 술렁임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젊은 사람이나, 나이가 들어도 건강한 사람은 부질없다는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흥분에 젖어
산다. 나는 그런 사람이 부럽다. 몸이 아프니 두껍던 그동안의 마음이 통증에 비례해 가늘어 진다. 육신이 있어야 그 속에 정신도 있다.

몸이 튼튼해야 정신도 맑게 고이고 사는 맛이 난다. 뭐니 뭐니 해도 육신이 먼저다. 옥에 갇힌 공자님, 사흘을 굶겼더니 말단 간수에게 밥 좀 달라고 우는 소리를 하면서 배가 고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싫다고 했다. 배가 고프고 몸이 아파봐야 육신이 먼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혼을 하고 탈 없이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일찍부터 있었던 예언이 적중해서 한 지붕 밑에서 한 솥 밥을 먹고 한 이불 속에서 살을 맞대고 기분 좋게 사는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웃어대지만 그것이 진정한 육신의 행복의 조건은 아니며, 정신적으로도 인간으로서의 고독을 벗겨주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이 없으면 종교도 없다. 삶에서 오는 외로움, 죽음에서 오는 외로움, 대중가운데 있어도 혼자인 외로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데굴데굴 구르는 외로움... 그래선지 영원한 외로움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에 사람은 사람을 찾는다. 친구도 만들고 애인도 만들고 아내나 남편도 만든다. 전혀 모르던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알게 되고, 알던 사람이 더욱 가까워져 함께 살게 되면 전생의 인연이라던가,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고 기분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전생의 인연이라던가, 예언이 개념적이고 철학적이고 윤리적이면 마음속에 소중하게 품는 종교적인 관계가 되어 서로서로 믿으면서 살게 되고, 그 예언이 맞지 않으면 다만 유혹의 한 무기로서 사용이 되었을 뿐 결국은 미신으로 낙착이 되어 서로서로 믿지 못하면서 살게 되는 관계가 된다.

봄이다. 잎새에 후드기는 봄날 저녁의 너그러운 저녁노을을 노년의 아량이라고 적어서 우표를 붙일까... 인생에는 아량은 있어도 행복은 없다. 아내나 남편들은 아량으로 사는 것이지 행복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기분이 좋다고 그것이 복은 아니다. 명품 핸드백을 들고 길을 걷는다고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재산이 많다고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좋은 집에 산다고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직업이 좋다고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장사가 잘되어 돈벌이가 잘된다고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인물이 좋다고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기분 좋은 일들이 행복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완성된 기분 좋은 일, 그것이 행복인데 그것이 없다. 그래서 만들어 가려고 노력을 한다. 인생은 수고로 시작해서 외로움으로 마감한다. 행복이란 완성된 현재인데 미완성에 바치는 현재의 수고가 처절할 뿐이다.수고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완성이기 때문이다.

집들은 다 마찬가지인데 첨탑에 십자가가 달린 건물을 보면 왜 마음이 놓이고 푸근할까? 흥을 돋우는 세속음악을 듣다가 종교음악을 들으면 왜 마음이 놓이고 안정될까? 육신은 외로워도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면 외롭고 고달프다는 인생을 위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만 육신의 건강이 허물어지면 모두 다 헛되게 된다. 마음과 정신, 어디에 담겨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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