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짜 표는 없다

2012-03-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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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선거철이 무르익으면서 한인사회를 찾는 주류사회 정치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월의 음력설 잔치나 3·1절 기념 공연 때만 해도 평소보다 더 많은 주류사회 정치인들이 몰렸다. 그들의 이런 행보는 말할 것도 없이 한인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인사회 행사장 뿐 아니라 한인사회 정치활동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한인유권자센터 등을 직접 ‘공략’하기도 한다. 유권자센터에 따르면 뉴저지주 연방하원의원을 비롯한 각급 선거의 각당 후보들이 그동안 적지 않게 다녀갔다.

그러나 정작 한인사회 분위기는 너무 조용해 보인다. 미국 정치인들이 한인사회에 던지는 ‘추파’는 한인사회로 볼 때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들이 우리를 찾아올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요구조건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성경의 가르침처럼 ‘두드리면 열리는 나라’이다. 죄를 저질렀거나 정해진 규칙에 위배되는 일 빼놓고는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곳에 30년간 살면서 안 될 것 같이 생각되던 일도 창구를 열심히 두드려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한인사회는 더 이상 주류사회 정치인들에게 돈만 거두어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려운 형편에 무작정 돈을 거두어 주고 사진만 찍을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저들로부터 한인사회에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 있을지 궁리해야 한다.


한인사회는 소수민족 집단이자 소기업 위주의 이민자 사회이다. 따라서 요즘 같은 경기침체 상황에서 남들보다 훨씬 심한 고충을 겪는다. 물품구입만 하더라도 전에는 가능했던 라인 오브 크레딧(Line of Credit)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업소들이 매우 시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 당장 돈이 없어도 이 시스템을 통해 물건을 구입해서 이자와 원금을 갚아가며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악화된 경제상황으로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아 물건구입이 원활하지 못해 장사하기가 너무 어려운 현실이다.

정부는 경제난을 완화시키기 위해 수천억 달러의 지원금을 방출했지만 한인들과 같은 영세업자들에게는 직접적인 혜택이 오지 않았다. 경제를 망친 대기업들에게는 지원금을 뭉텅뭉텅 퍼주면서 소상인들에게는 크레딧 타령이나 하며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어 한인업주들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주정부나 연방정부는 은행에 돈을 지원해 어려움을 겪는 소상인들이 물건을 구입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설상가상으로 시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운답시고 청과상, 세탁소, 네일살롱, 식당, 주류업계 등 이미 곤경에 처해 있는 소규모 업체들에게 좌대, 위생, 환경, 간판 등을 이유로 벌금티켓을 무차
별적으로 떼고 있어 한인업주들의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1차 위반의 경우 경고조치하고, 재발하면 시정을 명하고, 그러고도 개선이 안 되면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사정없이 떼고 있다. 말은 소시민의 비즈니스를 보호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벌금을 멋대로 올리거나 위반 티켓을 무턱대고 발부한다.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기진맥진해 있는 소상인들을 확인 사살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한인사회를 찾아오는 주류사회 정치인들에게 이런 문제점을 설명하고 해결을 요구하며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정치인들에게 우리의 표를 모아 줘야 한다. 한인사회가 뜻만 모은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문제다. 우선 커뮤니티의 자원을 집결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인단체장들이 안일하게 대표행세를 하고 다닐 때가 아니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국정치나 바라보고 기웃거릴 일이 아니다. 이번에도 드러났듯 한국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조
아려도 국회의원 비례대표 끝자리 하나 주지 않는다. 공연히 헛물만 켜지 말고 한인사회에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오기 위해 주류사회 정치인들과 긴밀하게 접촉할 수 있는 브릿지 역할에 역점을 둬야 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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