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에 없는 것

2012-03-26 (월)
크게 작게
허병렬 (교육가)

세계의 인구가 70억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10분의1인 7억만 골똘히 생각하더라도, 7억 가지 다른 생각이 나온다. 여기에 새로운 생각을 보탠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그런데 어느 단체의 한 게시판에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라’고 대문자로 적혀 있다. 거기에 보태서 그 문자 게시판 중간 쯤에서 ‘결코 남의 것을 베끼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이런 말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글귀를 만난 자리가 디 아츠쇼(The Arts Show) 였기에 그 미술가들의 정신이 더 뚜렷했다.

‘시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도록 일정한 공간 속에 미를 표현하는 예술, 회화, 건축, 조각 따위’이는 미술의 뜻을 알리는 사전적 해석이다. 그러나 ‘일정한 공간 속에’는 이미 거의 무한대로 확대되었고, 더 넓은 분야의 활동이 미술에 속하게 된 요즈음이다. 말하자면 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모든 활동이 미술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술가는 누구인가. 그것도 세상에 없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사람들 모두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은 ‘창의력’을 강조하는 시대다. 사회에서도, 기업에서도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을 구하고 있으니 정치계까지도 창의력이 풍부하여서 좋은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인재를 구하게 되었다. 창의력이란 새로운 생각을 하는 힘이니까 말하자면 세상에 없는 것을 찾는 마음과 일맥상통한다. 과연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생각이 있을까.분명히 있다. 아직도 배고픈 사람들이 많고, 아직도 부족한 기능의 물품들이 많고, 아직도 불편한 일들이 많다. 이것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생각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환경과, 시대의 철학에 영향을 준다. 아날로그시대가 디지털시대로 바뀐 것도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발명품으로, 새로운 생활문화 시대를 열어 세계를 통째로 개인의 주머니 속에 넣게 되었다.

‘남의 것을 베끼지 말라’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베낀다는 것은 남의 것을 그대로 옮긴다는 뜻이다. 베꼈다고 의심을 받을 경우 우연일 수도 있고, 의도적일 수도 있다. 엄밀히 따진다면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서로 베끼고, 빼앗기면서 새로운 창조를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베끼는 일을 삼가자는 뜻이다. ‘생각’은 ‘물건’보다 더 귀한 재산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게 된다. 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고 있을까. 예술적인 아름다움보다도, 로댕이 선택한 모티브에 마음이 더 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조각의 그는 과연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있을까.

‘팡새’를 쓴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 즉 사람이 생각하는 천부의 능력을 위대하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면서 자유분방하게 펼칠 수 있고, 인생을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생각하는 능력이 있음을 감사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의 기반을 이루는 정신활동이며, 바로 여기서 ‘새로운 생각’이 태어난다.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작은 씨앗은 생활 주변의 영양소를 흡수하면서 성장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세상에 없는 것이 태어나며 우리 생활이 더욱 풍부해진다.

‘세상에 없는 것’을 찾거나 만들기는 한 번 도전하고 싶은 일이 아닌가. 우리가 종사할 수 있는 직업의 수효가 하루하루 늘어가는 요즈음, 세상에 없는 것 찾기와 만들기의 범위도 다양할 것이다. 하루의 생활, 가정 용품, 문구, 육아일기, 친구 사귀기, 여행계획, 세상읽기, 독서일기, 디지털기구, 문화산책, 다문화 이해, 생활의 확대... 등 광범위한 생활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여기 새싹이 나와요!” 바로 발밑의 잔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어린이를 보며 생각한다.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생활 주변에서 일거리로 ‘세상에 없는 것’을 찾거나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열 걸음 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반 걸음 앞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노력은 안일한 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에 단 하나인 내 자신이 되려는 노력이 아닐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