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주한인의 자존심

2012-03-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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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198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인들이 미국에 오는 것은 꿈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한미간의 무비자협정으로 범법자만 아니면 누구든 자유롭게 올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은 미국에 와서 살려고 하는 한국인들이 전보다 많지 않다. 한국도 살기 좋은데 뭣 때문에 모든 면에서 생소한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사느냐는 것이다.

미 국토안보부가 밝힌 이민통계에 따르면, 미국 이민전 한국이 최종 거주지이던 사람은 1941-50년 107명, 61년-70년 3만4천526명, 71-80년 26만7천638명, 81-90년 33만3천746명, 91-2000년 16만4천166명 등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미국이민은 80년대를 기해 줄어들긴 했으나 그래도 꾸준히 늘어 이제는 미주한인의 숫자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한인들이 늘어나다 보니 한인사회에 문제점도 많이 노출됐다. 대형사기, 강력사건 등을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피해온 경제사범이나 흉악범들이 생겨났다. 지금은 이들을 잡기 위해 한미 간에 공조수사체재가 이루어져 미국도 이제는 이들의 도피처, 은신처가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가 좋아지면서 이제는 오히려 한국이 해외 한인들의 경제사범 및 강력범자들의 은신처 혹은 마약밀매 등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미국에 이민온 한인들은 누가 뭐래도 성실하고 부지런한 생활로 단기간에 미국속에 성공적인 한인사회를 구축한 집단으로 타인종의 칭송을 받았다. 한국의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이민자들로 자리매김을 해 왔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 경제규모 10위에 진입하는데 기여한 미주 한인들의 공로나 헌신, 역할의 지대함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의 가뭄이나 홍수 때도 빠지지 않고 발 벗고 나서 쉽게 재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들도 미주한인들이다.

한국에서 어느 누가 이들을 폄하해도 해외거주 한인들은 저마다 자부심을 갖고 미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들이다. 최근 한국을 찾은 미주한인들 중 일부가 해선 안될 범죄를 저질러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미주한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였다. 한국의 경제가 좋아지면서 한국에 잡을 찾아간 한인 2세 어학원강사나 국제변호사들이 한국인 직장인과 학생들을 상대로 마약을 불법 유통한 것이다. 한국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앞으로 재외동포비자로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강사로 활동하는 한인 2세들에게도 마약검사를 의무화한다는 보도다.

그레샴의 법칙처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소수의 잘못된 미주출신 한인2세들의 행동과 처신이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고 미주한인사회의 위상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현재 활동중인 한인 1.5세나 2세들의 이미지와 신뢰감에도 크게 먹칠을 하였다. 부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부의 환원과 나눔, 도덕적 책임감을 강조하는 노블리제 오블리주 정신은 꼭 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많이 한 교육자나, 의사, 변호사 등 사회지식층 인사들에게도 적용되는 얘기다.

한때 한국에서는 열심히 살아가는 미주 한인들을 ‘미국거지’ ‘똥포’ 라고 부르면서 무시해 한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제 한국의 수준은 여러 면에서 월등 높아지고 지구촌이 글로벌화 되면서 미국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이제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옛날에 우상시됐던 미국이민자라는 칭호도 아니고, 기적으로 이루어낸 경제도 아니다. 우리만이 갖고 있는 성실함과 정직성, 근면성과 철저한 준법정신, 질서의식이 유일한 버팀목이고 자존심이다.

한국을 찾는 미주 한인들의 숫자는 한미FTA 발효 등 새로운 물결과 시대 변화에 따라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미주한인이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자존감있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땅에서 보이는 미주한인의 일거수일투족은 미주한인전체의 얼굴이고 한인사회의 자존심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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