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한국 검찰과 미국 검찰

2012-03-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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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딸 정연(37)씨의 미국 부동산 매입 의혹 사건으로 한국이 떠들썩하다.한국 검찰의 수사 여부를 놓고 여당과 야당이 국회에서 설전을 벌이는가 하면 심지어는 문제의 주택이 호화이다 아니다가 인터넷 핫이슈로 등장한다.하지만 이 사건의 골자는 정연씨가 뉴저지에 소재한 콘도, 또는 콘도들 매입을 위해 미국에 거주하는 경주현 전 삼성종합화학 회장 딸 연희(43)씨와 이면계약을 체결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위법 행위가 있었는가의 여부다.

사실 한국 검찰은 노 대통령 비자금 의혹 수사 당시인 2009년 이미 상당 부분을 확인한 바 있다. 검찰은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홍콩 은행계좌에서 중국계 웡임씨의 홍콩 계좌로 40만 달러가 송금된 증거를 확보했다.정연씨도 이 돈이 ‘허드슨클럽’ 콘도 400호를 계약하기 위해 사용됐음을 시인했다.
웡임씨는 연희씨가 뉴저지주에서 설립한 투자 회사와 자동차 딜러 회사에 각각 부사장과 운영이사로 등록 신고 된 여성이다.

문제의 400호 콘도는 연희씨가 웡임씨의 남편 웡윙와씨와 공동명의로 매입한 뒤 1달러에 넘겨주자 웡윙와씨가 하루만에 부부 공동소유로 만들어 놓은 부동산이다.또 정연씨는 연희씨가 400호 매입과 동시에 자신 단독 명의로 별도 매입한 435호에 대해서도 5만 달러를 건네 준 사실을 시인했다.정연씨 자신이 한 때 실제 거주했던 435호의 임대료였다는 것.따라서 노무현-박연차-웡임-경연희-노정연 관계와 문제의 콘도들에 대한 금전 거래는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단 그 규모와 확인된 관계자들 이외의 관련 ‘인물’, 또는 ‘인물들’이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그런데 문제는 사건이 정치화되면서 한국 검찰이 꾸물거리는 동안 오히려 미국에서 수사에 나설 정황이 포착됐다는데 있다.이는 이번 사건과 관련 연희씨가 문제의 콘도 2채와 또 다른 콘도 1채를 매입하며 각각 다른 이름과 사회보장번호를 사용한 사실이 뉴저지주 정부에 제출된 부동산 거래 서류들에서 드러났고 미 연방국세청으로부터 이미 2차례에 걸쳐 탈세 추징금을 징수 당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 딸과 기업 회장 딸이 위증과 신분도용이 동원된 돈세탁 및 탈세 범죄 수사 대상이 돼 미국 검찰에 의해 범죄 공모(conspiracy) 혐의로 기소될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BBK 사건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이 2001년 8월과 2002년 1월 미국 로스엔젤리스 2개 은
행에 허위 세금보고서를 제출해 총 35만 달러 사업운영자금 융자를 얻은 뒤 2차례에 걸쳐 수표를 발급, 결재한 것을 놓고 최고 80년 실형이 가능한 범죄혐의들을 적용해 재판이전협상(Plea Bargain)에서 유죄시인을 이끌어낸 미국 검찰이다.

당시 재판이전협상문을 보면 미국 검찰은 에리카 김에게 동생이 한국에서 받고 있는 범죄혐의에 가담한 여부를 비롯해 탈세 등 추가 범죄 혐의 적용 가능성을 내세워 상당한 압력을 가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연희씨의 귀국 문제만을 놓고도 절절매고 있는 한국 검찰과는 수준이 다르다. 어쩌면 한국과 미국에서 발생한 노씨-경씨 부동산 의혹 사건의 전모를 밝혀 한국의 정치적 논쟁을 잠재우는 몫은 한국 검찰이 아니라 미국 검찰의 것일지도 모른다.

<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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