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념관

2012-03-12 (월)
크게 작게
김윤태(시인)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아니면 시카고... 이민을 온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이 거대한 도시에 앞으로 누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기념관이나 도서관이 세워질까? 얼마를 더 기다려야 기념관이나 도서관이 우리 앞에 세워 질까? 한인사회에도 과연 그럴 날이 있으며 그럴 날이 올까?

근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한국에서 문을 열었는데 또 소수의 데모꾼들이 기념관 문 앞에서 고함을 지르며 반대를 했다. 특허가 된 한국적 풍경이 한 장면으로 또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다.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쓰도록 바꾸어 놓았던 예수님이나 부처님, 심지어 공자나 맹자님에게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계를 평화 쪽으로 이끌고자 하는 미국을 좋아 하는 나라들이 많은가 하면 싫어하는 나라들도 많다.


맹자님의 말씀이 맞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다 좋을 수도 없고 다 싫을 수도 없는 것이 인간사회의 인지상정이다. 싫고 좋고는 그저 반반 정도로 어찌 보면 선거 때의 표밭과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이 뒤늦게나마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가난한 아주머니가
생계를 위해서 시장 길에서 만들어 파는 김밥 말이 한 줄을 사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건네 드리고 싶은 묘한 정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독일을 시찰 방문한 직후, 한국의 가난, 아니 전 국민의 보릿고개를 없애기 위해서는 전 국토의 소통을 첫째로 손꼽고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부산 항구를 향해 고속도로를 뚫었다. 농어촌의 게으른 의식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새마을 운동을 펼쳐 농민들을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규모는 지금에 비해 별로 크지는 않았지만 공단을 만들어 공산품을 생산하게 하고 아울러 수출이란 생소한 길을 열도록 무역업자들을 독려하였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제창하고 각종 문화에 온 힘을 기울였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잘 살기위한 문명에 온 힘을 쏟은 분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한숨만 쉬던 가난한 시절의 한강(恨江)을 땀을 흘려야 잘 살 수 있는 한강(汗江)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지금은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분을 가슴에 담고 기념관을 뒤늦게나마 문을 열게 되었는데 기념관 앞에서 소수의 데모꾼들이 기념관을 반대한다고 고함을 지른다.

정치적으로 유신정치란 불미스러운 한 단면은 있었지만 유신정치를 해서라도 국가경제를 계속 부흥시켜야 한다는 그의 일념이었다. 가까운 일가친척들도 잘 다스렸고, 친지들도 부정부패에 젖어들지 않도록 엄하게 감시를 했다.나는 개인적으로 늘 그 분에 대한 향수 같은 감정이 가슴속을 적신다. 앞으로 누가 한인이 모여 사는 대도시 이민사회에서 업적을 기리는 기념에 이름이 새겨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들지 않고 출렁이는 어두운 바다 위를 불 밝히며 뛰는 등대의 모습으로 지금 우리 가운데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길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길이 길에게 묻는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