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죽음

2012-03-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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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이 사는 게 뭐, 별거 아닌 것 같다. 허무한 느낌이 든다.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 누구의 노래 말처럼 인생은 나그네 길인가. 정말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게 인생인가. 정일랑 미련일랑 두지 말고 가야 하는 게 인생인가. 벌거숭이로 왔다가 벌거숭이로 가는 게 인생인가. 구름처럼 떠돌다 사라지는 게 인생인가.

45살의 젊은 변호사.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대형 간판에 광고를 하는 유일한 한인변호사였기에 그렇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한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곳엔 의례히 그의 얼굴과 홍보가 있어 자동차를 타고 지나다니거나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에게 누구보다도 친근감을 가져다 준 그였다. 그런 그가 돌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성서 전도사 3장에 보면 때를 이야기한 것이 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수천 년 전에 쓰여 진 전도서 속의 인생이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인생이 조금도 그 상황이 다를 바 없음을 본다. 인생이란 이렇듯 모든 때,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다 맞이하는 때가 결국은 죽을 때이다. 다만 짐승과 인간의 죽음후가 다르다. 짐승의 혼은 땅으로 들어가지만 인간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니 그 위가 곧 천국이 아닐까.

하늘이 사람을 데려가려 하면 사람은 갈 수밖에 없나 보다. 1.5세로 영어도 잘하며 한국말도 잘하여 이민 사회뿐만 아니라 장차 한인을 대변할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고루 갖추었다는 그 변호사. 청소년과 장애우, 한인노인 등을 위해 한인사회 곳곳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던 그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나 이미 그는 세상에 없다.

가끔 꿈을 꾼다. 그러다 잠을 깬다. 깨어보면 꿈속의 일은 현실이 아니다. 가위눌리듯 꿈을 꾸다 벌떡 깨어나면 식은땀으로 온 몸이 젖어 있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꿈은 꿈으로 끝나는데 그 꿈속에선 모든 해괴한 현상들이 벌어진다. 자신이 죽는 꿈도 꾼다. 죽어 무덤에 들어가는 꿈도 꾼다. 무덤가에서 슬피 우는 가족들의 모습도 본다. 어떤 때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도 꾼다. “아 이제 죽는구나!”하며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온 몸이 사뿐히 나비처럼 구름을 타듯 가볍게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죽지 않고 땅에 발을 디딘다. 또, 꿈속에서 꿈을 꾸는 때도 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꿈속에선 일어난다. 인생이란 정녕 꿈과 같은 것이 아닐까.
종교철학에서의 죽음의 의미는 인생 노정의 과정에 불과하다. 인생노정이란 태어남과 죽음까지가 아니다. 태어나기 전과 태어남,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후까지 연결된다. 그러니 사람에게서 호흡이 끊겼다고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부터 인생은 시작돼 사람이란 몸을 타고 태어나 살다 죽으면 다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간다.

인생과 짐승이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나 혼은 몸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고 전도서는 말한다. 그 곳은 아무도 모른다. 고등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극락일 수 있고 연옥이나 무간지옥도 될 수 있다. 장자가 말하는, 모여서 만들어졌던 기(氣)가 죽으면 다시 흩어져 기(氣)가 온 곳으로 돌아갈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을 때, 겸손하게 살아야한다고 누군가 말한다. 그 겸손이란 언제 어느 때 하늘이 불러도 불려갈 채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 같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최희준의 하숙생처럼 정녕 인생은 하숙생이련가.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이다. 하지만 먼지처럼 흩어져 버릴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의 생명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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