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을 밝히는 밑거름

2012-03-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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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홍(목사)

우리는 발걸음도 가볍게 무거운 짐을 운반하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하이티에 복음을 들고 찾아가는 길이기에 몹시 고무되어 있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비행기에 이상이 생겨 한 시간 반 이상 지체가 되었다. 양 다리는 도착도 하기 전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긴장이 되니 뇌신경이 평안치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없이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수도를 벗어나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처음오신 선교 팀에게는 한 없이 맑고 깨끗한 카리브 해의 풍경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했다. 나야 열한 번째이니 무덤덤하지만 말이다. 생막이라는 하이티 중앙에 있는 인구 20만의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넘어서였다.

다음날 우리는 새벽부터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의료사역과 안경사역, 사진사역과 어린이 성경학교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위정자들이 밉기도 했다. 어쩌다 국민들을 이토록 돌보지 않았는가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들은 하루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며 입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뜨거운 빛 아래서 그래도 의사의 손길한번 만져보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차로 두 시간이 넘은 곳에서 찾아온 환자도 있었다.


한편으론 저들이 부럽기도 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우리 교인들도 일 년이 무엇인가 몇 년이 지나도 보험이 없어 의사한번 찾아보지 못하고 아픔을 씹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저녁이 되니 선교대원들이 저마다 혈압이라도 한번 재 보자고 팔뚝을 걷어 부치고 내어민다. 말이 선진국이지 뉴욕에서 저들이 혈압 한 번 변변히 재어본 적이 있었던가? 그래도 우리는 행
복하다. 상대적으로 말이다.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다음날을 준비했다. 다음 날 역시 새벽부터 줄은 이어졌다. 적어도 하루에 750명씩 3일 동안 끝없는 사역이 계속 되었다. 우리는 지치고 힘이 들었지만 저들에게 조금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픈 일념 때문이다.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 저들에게 힘이 되고 작은 보탬이 된다면 우리는 조금도 피곤을 느끼지 않고 더 열심히 뛰는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들을 사랑해서이며, 우리의 작은 것이 저들의 삶에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아닌가! 이렇게 외쳐본다. 하이티 사람들이여 우리를 딛고 일어서라. 우리는 기꺼이 당신들의 세움을 위하여 마다않고 밑거름이 되어주마 라며 외치고 싶다. 우리는 보았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고 모든 것이 후진스럽지만 머지않아 새 역사를 쓸 기틀을 위하여 워밍업을 하고 있다고....

빵보다는 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돕는 일을 위하여 우리는 다른 각도의 도움을 연구할 때가 되었다. 이제 고아원이나 짓고, 작은 학교나 짓고 하는 일을 벗어나 지금은 주린 배를 안고 맹물만 마시지만 머지않아 영양분이 많은 음식을 나눌 수가 있는 기회의 땅이 되게 하자.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수돗가에 많은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물을 길러가는 것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저들의 삶에 도움이 된 것에 기쁘게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 지친 몸이지만 적막한 주위에 별만이 반짝이는 곳에 발전기 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작은 전등이 주위를 비춰주는 것을 보면서 어서 한국인들이 저들의 삶 속에 희망의 불빛을 밝혀주고 내일을 새롭게 설계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비록 우리는 지나가는 한 시각에 점을 찍고 가지만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나무가 심어지고 자라 많은 열매로 이어져서 하이티를 살리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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