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은 희망을 깨운다

2012-03-07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아침에 잠이 깨어 옷을 입는 것은 희망을 입는 것이고 살아서 신발을 신는 것은 희망을 신는 것임을 다시 절감하는 요즈음입니다. 전에는 그리 친숙하게 여겨지지 않던 희망이란 단어가 퍽 새롭게 다가오는 날들입니다. 희망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불러야만 오는 것임을, 내가 조금씩 키워가는 것임을, 바로 곁에 있어도 살짝 깨워야만 신나게 일어나 달려오는 것임을 ...”
자면서도 깨어있는 희망, 죽어도 부활하는 희망을 꿈꾸며 자신의 또 다른 이름이 작은 희망일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이해인 수녀가 암투병중 발표한 시집 ‘희망은 깨어 있네’에 수록된 서문중 일부이다. 한마디로 희망은 부르고 키우고 깨울 때 비로소 오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 눈길이 한동안 머물렀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복잡하고 힘겨운 세상에서 쓰러지지 않고 버텨나가려는 우리들에게 “옷을 입듯 희망을 입고, 신을 신듯 희망을 신는다”는 이해인 수녀의 말보다 더 격려가 되고 힘이 되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삶은 희망의 연속이다. 희망이 없는 매일 매일의 삶은 우리를 질식시키게 한다. 더 이상 살아나가야 할 아무런 의미도 찾기 어렵다.유대인 포로수용소의 생존자 빅터 프랭클은 “많은 사람들이 포로수용소에서 견디지 못하고 죽어갔다. 하지만 그런 극한 상황속에서도 죽지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의미하
고 부조리한 현실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무리 고단하고 힘겨운 삶이라도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희망은 그런 곳에서 싹트는 것이 아닐까?

요즈음은 우리 주변에서, 한인사회에서, 아니 미국과 지구촌 곳곳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덩어리가 균열되고, 쓰나미가 밀려오며, 경제가 파탄나고, 사방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등 세상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일어설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질문이며 누구든지 대답할 수 질문이다. 바로 희망이다. 밤이 아무리 칠흑 같이 캄캄해도 참고 견뎌낼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새벽은 온다는 한 가닥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영하의 혹한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다시 따뜻한 봄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봄을 예고하는 입춘이 벌써 한 달 여 전에 지나갔다.


희망 속에서 봄을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성큼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 우리 삶에도 진정한 봄이 와서 모든 것이 다 활짝 풀려났으면 좋겠다. 그러나 날씨만 따뜻해진다고 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이 잘 풀리고 경제가 좋아져야 진
정한 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활기를 되찾고 살맛이 난다. 지난해 겨울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장사가 안 된다고 업주들이 푸념하더니 올해는 눈이 너무 안 와 겨울 장사를 망쳤다고 모두들 울상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처럼 달력상으로는 봄이 왔지만 우리들의 생활 전반은 아직도 꽁꽁 얼어붙어 있는 한겨울이다.

겨우내 경기침체로 업소들이 몸살을 앓았지만 다행히도 이제 봄과 함께 경기도 풀린다는 희소식이 들리고 있다. 주택시장이 호조를 보여 거래가 늘어나고 가격도 올랐다. 전미부동산중개협회(NAR)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달 기존주택 판매량이 2010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치를 초월해 추가침체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경제 개선 트렌드가 뚜렷하다고 전망했다. 만물이 소생하고 약동하는 계절, 봄은 희망이고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땅에 씨를 뿌리면 잎이 돋아나고 여름에 풍성하게 물이 올라 가을이면 열매와 곡식이 주렁주렁 맺는다. 봄은 세 가지의 덕을 지니고 있다. 생명, 희망, 환희다. 사계절 중 특히 봄에 마음이 설레는 것은 이 때문
이다. 올 봄엔 우리 모두 침체에서 벗어나 옷을 입듯 희망을 입고, 신발을 신듯 희망을 신자. 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