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레미 린의 사회경제적 비용

2012-03-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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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 (부국장대우/경제팀장)

오랜 지인의 고등학생 아들이 학교 농구팀에 뽑혔다. 감격한 이 부모들은 어지간해서는 아들 딸 자랑을 안하는 관례(?)를 깨고 “운동팀에 들어가는 것은 공부잘해서 상받는 것과 또다른 차원의 기쁨”이라고 자랑했다. 조만간 크게 한턱을 내라고 할 생각이다. 사실 고교시절 운동을 하다가 포기한 경험이 있는 자녀를 둔 한인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자녀들이 중학교때까지 재능을 보였지만 이후 체격이나 체력적인 한계를 느껴 그만 두는 일이 많다고 한다.

팀내 협동과 단결을 중요시하는 운동팀에서 대표 선수로 뛸 경우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는 생각에 자녀들을 적극 지원하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 투자와 불투명한 전망-직업선수로서의 가능성까지 포함- 때문에 일찌감치 꿈을 접는 경우가 허다하다.한인 2세들이 미국내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아직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영역이 바로 스포츠다. 특히 풋볼과 야구, 농구 등 미국내 인기 스포츠들의 경우가 그렇다.이중에서도 농구는 어떤 의미에서 언터처블(untouchable) 수준이다. 단순히 신장 뿐아니라 탄력있는 점프력, 체력 등에서 흑인이나 백인을 이기기가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혀왔다.


이곳에 대만계 제레미 린(뉴욕 닉스)이 뛰어들었다. 올시즌 NBA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린은 아시안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맹활약중이다. 하버드대 출신, 드래프트를 받지 못해 이팀 저팀을 떠돌았던 역경 스토리까지, 린은 신데렐라로서의 자격을 완벽히 갖췄다. 지난해 노조와 구단주의 갈등으로 경기 일정이 절반가까이 줄어들면서 팬들의 외면을 받았던 NBA와 그동안 선수 부상 등으로 성적을 내지 못하던 뉴욕 닉스는 린의 등장에 화색이 돌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린의 가치는 더욱 두드러진다. NBA 팀중 꼴찌에 가까웠던 뉴욕 닉스의 티켓 가치를 1위로 끌어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닉스 티켓의 가치는 130달러대에서 210달러대로 껑충 뛰었고, 닉스 구장인 매디슨 스퀘어가든의 자산가치는 린의 등장이후 1억7,000만달러가 늘었다고 포브스가 말했다.
린의 올해 연봉은 76만2,195달러, 하지만 시장에서의 가치는 완전히 다르다. 린의 시장 잠재력은 이미 타이거 우즈나 마이클 조던 수준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미국내 PR회사 서열 24위에 올라있는 5W Public Relations사의 론 토로시안 CEO는 “스캔들이 나기 전의 타이거 우즈와 맞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디어시장인 뉴욕에서 뛰고 있고, (중국 등) 외국시장까지 감안하면 마이클 조던 급”이라며 “시장 마케터의 입장에서 (린의 등장과 성장은) 꿈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내 아시안 아메리칸의 인구는 1,730만명으로 전체 5.6%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와 뉴욕, 텍사스에 50% 이상 집중돼 있다. 캘리포니아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으며, 뉴욕시와 LA, 샌프란시스코 등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두자리수 이상 몰려있다. 구매력은 지난 2009년 5,090억달러에 달했다. 대만이나 중국의 인구를 감안하면 린의 폭발력은 상상하기 어렵다. 린은 무엇보다 아시안아메리칸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공부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아시아계 이민자 부모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또 미국인들의 아시안에 대한 스테레오타입도 변화시켰다.

스포츠채널인 ESPN이 린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Chink in the Armor’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담당자가 해고됐다. 린의 당일 경기 부진에 대해 ‘갑옷의 틈(chink)’, 즉 약점이라고 한 것이지만 ‘chink’라는 단어가 중국인의 찢어진 눈을 비하하는 속어로 쓰인 것에 대한 반발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고의 NBA 스타인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는 “린을 놓친 구단의 단장을 해임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앞으로 린의 가치는 그가 얼마나, 언제까지 활약을 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치열한 경쟁속에서 그에 대한 견제도 만만치않게 심해질 것이다. 현재 린의 성공은 절반의 성공이다. 선수로서 그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직 불확실하고, 장담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아시안 아메리칸에게 운동 분야도 더 이상 유리천장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의 성공이 대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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