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와 하느님

2012-03-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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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교도소심리학자)

기독교의 깃점이라 할 수 있는 예수는 제자들을 앞에 모아놓고 “세상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며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유명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중에 “그대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답변한 한 제자는 예수의 수제자라는 영광을 수여 받았다.흥미 있게도 얼마 전에 한 심리학자는 어린아이들을 앞에 모아놓고 너희는 하느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변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책(Children’s God)으로 엮어낸 일이 있었다. 이 책은 4세에서 12세의 어린이 40명을 선택하여 성별 연령별 인종별 종교별 등 분포를 고려해낸 조사였다.

아이들 응답의 우선적 분석에서 발견된 현상은 아이의 신 관념은 그 아이가 처한 직접적 환경과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유대교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역사적 하느님, 선민사상 그리고 고난 당하는 민족의식 등을 반영했고, 힌두교 아이는 신도간의 단합과 명상, 신비의 초월자 인식 그리고 철저한 헌신태도 등을 대체로 반영했다. 아주 어린 4세에서 6세의 아이의 신 관념은 사회악과 인생 불행의 현실을 고려하고 신의 존재 여부를 의심하기도 하고 사후문제에 대한 사려도 포함했다. 남자아이들의 신은 매우 능동적이요 합리적인 속성을 드러내는가 하면 여자아이들의 신은 수동적이며 심미적이요 친밀감을 주는 신이라고 나타냈다. 그러나 환경의 영향과 성장과정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신 관념은 특기할만데가 없지 않다. 순진한 표현 속에서 자기들의 상황을 넘어선 어떤 영적인 것에 대한 솔직한 희구를 찾아볼 수도 있었다.


아이들의 응답을 총괄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다음 같은 몇 가지 뚜렷한 테마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신은 능력자로서 자기를 믿는 자에게 능력을 주며 어려운 일의 극복과 불가능한 인간의 성취를 가능케 한다. 둘째, 친밀의 신인 그는 신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사이를 친밀하게 한다. 셋째, 시공과 같은 물리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는 무소부재한 존재다. 넷째, 죽음과 불행 그 밖의 미지의 세계가 있듯이 인간은 신의 전모를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은 동시에 인간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자아내게 한다. 다섯째, 신은 세계와 인간에게 모든 변화를 가져오는 장본인이다. 여섯째, 신은 연결의 신으로서 인간만사를 서로 상호 연결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말하는 신은 빛의 신으로서 우리의 밖과 안에 빛을 비쳐주는 존재라고 되어있다.

조사를 마치면서 심리학자는 어른들에게는 아이의 순조로운 신앙심의 발전을 크게 방해하는 무서운 폐습이 있다고 경고한다. 즉 어른들은 문자와 의식에 치우친 나머지 그 글자와 의식 속에 담긴 영(spirit)을 파악하지 못한다. 만사를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양극화한다. 비제도적이고 비상식적인 견해를 허용치 않기 때문에 아이의 시야를 무참하게 좁힌다 등. 우리의 몸에 배인 인습과 타성이 신앙뿐 아니라 매사를 전형하고 있는 이때에 어린아이의 즉흥성과 담백함과 창의력은 한여름 밤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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