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차크 펄먼

2012-02-29 (수)
크게 작게
이차크 펄먼(Yitzhak Perlman). 그는 이스라엘이 낳은 금세기 최고의 바이얼리니스트이다. 그가 금세기 최고의 바이얼리니스트가 된 것은 그의 음악적 테크닉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에 대한 그의 특별한 자세 때문이다. 한번은 뉴욕 링컨 센터에서 연주회가 열렸다. 그의 명성을 듣고 모여든 청중으로 에버리 피셔 홀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찼다. 무대가 올라가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자리 잡았다. 이제 주인공 펄먼이 등장할 차례이다. 누구나 펄먼의 연주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가 한번 무대에 나와 서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펄먼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부모 밑에서 1945년 8월 31일에 태어났다. 그런데 그가 4살이 되었을 때 중증 소아마비에 걸렸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그가 걸으려면 양쪽 다리에 의족으로 보조 장치를 하고 두 개의 크러치를 짚어야 만 했다. 연주를 위해 넓은 무대까지 걸어 나와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으려면 많은 수고와 시간의 여유가 필요했다. 그날도 펄먼은 늘 하던 대로 천천히 그리고 밝은 웃음을 띠우면서 걸어 나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몇 차례의 튜닝이 끝난 후 지휘자에게 눈짓으로 연주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벅찬 기대감으로 자리한 청중들은 세계적인 바이얼리니스트와 함께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듯 막이 오르고 교향곡의 첫 소절의 도입부가 끝나고 둘째 소절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이었다. 갑자기 마치 누가 총을 쏜 것처럼 “탕-” 하는 괴음이 울리며 연주회장을 진동시켰다. 이게 웬일인가. 바이얼린의 현 하나가 끊어진 것이다. 놀란 청중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펄먼이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물으며 대답하느라 연주장은 시장처럼 소란스러워 졌다.


펄먼은 그 자리에서 잠시 눈을 감고 묵상하더니 곧 지휘자에게 계속하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줄 하나가 끊어진 채로 교향곡을 완주 하겠다는 신호였다.
청중들은 힘든 연주를 다 마치고 땀을 닦고 앉아있는 그의 의연한 자세에서 예술적 카리스마를 느꼈고, 진지한 얼굴 표정에서 품어 나오는 장엄한 분위기에 모두가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멈추지 않는 스탠딩 오베이션의 찬사가 물결치듯 장내를 출렁거리고 있었다. 펄먼은 두 손을 들어 흥분한 청중을 가까스로 진정 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나의 음악적 사명은 지금 나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들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음악을 창조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얍복강의 야곱처럼 고난이 축복으로 바뀔 때 까지 고난의 자리에서 그냥 물러서지 않는 것이 곧 나의 예술관입니다.” 말을 마친 펄먼은 다시 크러치를 집어 든 다음 환한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걸어서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당신은 리더인가. 잊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며 펄먼처럼 그대의 길을 의연히 가라. “하나님이여, 내가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기보다는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그것을 가지고 한 차원 더 높은 창의적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