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태를 읽는 노인들

2012-02-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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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요즘 인간의 평균수명은 나라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70세 정도로 친다. 선진국들과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이보다 더 길고, 통상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더 길다. 현재의 추세라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2025년에는 90세, 2040년에는 100~120세, 2060년에는 125세를 각각 넘게 될 것으로 인구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 말에 수긍이 가는 것은 이미 100세까지 사는 노인들의 수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도 요사이 100세 노인의 생일잔치가 심심찮게 열린다. 옛날에는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60세만 살아도 장수한 것으로 치부돼 환갑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이 드물다. 100세까지 사는 노인들이 속출하는 판에 고작 60세가 됐다며 회갑잔치를 여는 것이 속된 말로 ‘쪽팔리기’ 때문이다.

환갑을 경사로 여겼던 옛날엔 그 이상의 장수를 기리는 별칭이 있었다. 고희(古稀, 70세), 희수(喜壽, 77세), 산수(傘壽, 80세), 미수(米壽, 88세), 졸수(卒壽, 90세), 백수(白壽, 99세) 따위가 그런 말이다. 고희는 “사람이 70까지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물었다(人生七十古來稀)"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곡강시(曲江詩)’에서 유래하며 나머지 별칭들은 한자를 풀어서 만든 말이다. 예를 들면 희수(77세)의 희(喜)자엔 칠(七)자가 두개 겹쳐있고, 산수(80세)의 ‘傘’을 풀면 八자와 十자가 되며, 미수(88세)의 米자를 풀면 八十八, 졸수(90세)의 卒은 九자와 十자, 백수(99세)의 白은 百(100)에서 한(一)살을 뺀 나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이런 별칭들이 별 의미가 없게 생겼다. 150세까지 살 날이 다가온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학의 발달과 사람들의 인식변화로 영양가 있는 음식섭취, 규칙적인 운동, 정기 건강검진 등 소위 ‘웰빙’ 라이프스타일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무병장수를 추구하는 신약들이 현재 시험 또는 승인 단계에 있는 이유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독일의 빌트지가 발표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미래의 알약(pill)’들은 몸의 땀 냄새 및 마늘냄새 제거부터 백발 예방, 발기부전 치료, 도박중독 치료, 숙취해소, 건선치료, 수명연장제 등이 망라돼 있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에 대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해 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미국에서 규정짓는 노인의 나이는 소셜시큐리티 연금과 메디케어 보험 혜택을 받게 되는 62~66세이다. 그러니 90~100세까지 장수하는 노인들에겐 30~40년의 긴긴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 될 만도 하다.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시간이 지나면 심신이 뒤틀리고 급기야 멀쩡했던 몸도 병이 나기 십상이다.

요즘 한인노인들 중에는 그림, 붓글씨, 사진촬영이나 영어, 컴퓨터 등을 열심히 배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태에 뒤지지 않겠다며 아이팟, 스마트 폰 등 첨단기기를 구입해서 젊은이들처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노인도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뒷방 신세로 전락하는 노인들이 아니다. 젊은 세대에 뒤지지 않으려면 그만큼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노인들이다.

최근 한인가정상담기관들에 의하면 한인우울증 상담 케이스 중 60대 이상이 30~40%를 차지할 정도로 노인들의 우울증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많은 노인들이 활기차고 보람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노인이 소외된 삶을 사는 것은 세상 탓, 나이 탓 보다는 자신의 소극적 사고방식 탓이다.
또래 노인들과 어울려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기보다 봉사기관 등을 찾아 타인을 위해 헌신하며 땀을 흘려보는 것도 노후의 긴 세월을 보람있게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건강관리를 기본으로 마음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노후생활은 자동적으로 알차고 풍요롭게 장식될 수 있을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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