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변화와 발전

2012-02-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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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역사란 발전의 발걸음이고 그 발걸음의 흔적을 변화라고 말한다. 크게 말하면 인류이고, 작게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발전하기를 바라고 그 발전에 기대어 변화하기를 희망하며 산다. 사실 우리는 지금 모두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도, 가정도, 심지어는 산골의 화전민까지도 발전의 시대에 살면서 시대의 산물인 변화를 체험하면서 살기를 바라고, 또한 변화를 체험하면서 산다. 현대라는 시대이다.

현대라는 말은 ‘지금’ 혹은 ‘현재’라는 내용이 담긴 뜻보다도 발전의 시대를 현대라는 짧은 말로 시대감각의 모든 것을 담는다. 그런데 발전의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과연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하는 시대에 편승하고 살면서 우리는 과연 발전하고 있는가?


나는 자주 의구심을 갖고 나 자신을 들여다 본다. 과연 나는 발전하고 있으며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 무엇이 발전이며 무엇이 변화인가? 종교계도 변화하지 않으면 신도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변화를 시도하며 발전을 꾀하고 있고, 학계도, 산업계도, 심지어는 소규모 장사꾼도 살아남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현대라는 규정은 ‘뒤로 가는 발전은 발전이 아니고 거꾸로 가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의식의 규정인 것이다.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가고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해도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대를 누가 발전의 시대라고 일컬었으며 변화의 시대라고 했을까?
건물을 지었다 하면 곡선을 그리면서 여유있게 뻗은 기와집 처마의 부드러운 미적 아름다운 감각은 다 밀어내버리고 창끝같이 날카로운 모서리로 지은 시멘트 건물이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 구석구석까지 들어찬다.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시골 개천에도 냇물을 내려다보면서 정서가 꾸물거리는 돌다리나 징검다리, 아니면 나무다리를 다 밀어내고 시멘트 다리나 쇠다리를 놓는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발전이란 명목을 달기 위해서이다. 한국식이나 서양식이나 거기에는 장단점을 꺼내서 논할 여지가 없는데 동양의 정서가 서양의 편리로부터 모두 밀려난다. 동양은 정서와 편리가 함께하고 서양은 편리와 경제가 함께 한다.

그런데 동양식에서 서양식으로 모양이 바뀌면 한국에서는 그것이 발전이고 그것이 현대식으로 발전한 변화로 여긴다. 서양식으로 변화하는 것이 과연 발전일까? 동양식을 지키면 발전에서 낙제점을 받는다는 말일까? 밥 대신 빵을 먹고, 나물 대신 고기를 즐기면 식탁도 발전이고 현대식 변화로 여긴다. 많은 성인들은 당뇨병이다 암이다 혈압이다 하는 각종 병에 걸리는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 병원마다 환자의 장터가 되고, 아이들은 체중이 비대해 지고, 시멘트에서 풍겨 나오는 독성으로 인해 피부병에 시달리며, 아파트 공간에서 하늘이 얼마나 푸르고 넓은지를 다 잊어버리고 철창 안 생활을 경험한다. 현대식 발전이고 현대식 변화다. 그러니 푸성귀 같은 아이들의 그 작은 마음마저도 여유가 없다.

동양식은 유적으로 남고, 서양식만 발전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모양을 통째로 바꾸어 놓을 날도 멀지 않다. 서양식의 극치인 뉴욕의 발전은 어디로 향해서 행진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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