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각상이 말한다

2012-02-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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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병 렬 (교육가)

필자가 요즈음 관심을 가지는 조각상들을 생각해본다. 첫째는 북한의 김일성 부자 동상이다. 평양시민들이 만수대 예술극장을 관람한 뒤 동상을 돌아가고 있는 사진을 본다. 이 동상은 지난 12월 사망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70세 생일에 공개됐다고 한다. 둘째는, 1945년 8월 14일 일왕의 무조건 항복 발표 직후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수병과 간호사가 격정적으로 키스를 하는 조각상이다. 셋째는,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인 평화상이다. 이상 세 조각상은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점토나 밀가루반죽을 주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들라고 한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족, 친구, 자기 자신을 만든다. “왜 이 사람들을 만들었지요?”하고 물으면 “좋으니까, 놀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자랑하고 싶어서, 그냥...” 이라고 대답한다. 결국 그 사람들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 집단은 그런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업적을 기념하려고 흔히 조각상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세상에는 이런 저런 조각상들이 많다.
민족이나 나라를 위해 큰 사적을 남긴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조각상에 말탄 모습이 흔한 것을 옛 소련(러시아)에서도 보았다. 북한은 이미 고인이 된 위정자의 통치력이 준마를 타고 구름 위를 날 듯 훌륭하였음을 상징하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는 전연 관계가 없다.


타임스스퀘어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 조각상은 더없이 미국적이다. 이들의 사진을 1945년‘라이프’표지로 보았을 때의 강렬한 충격과 종전의 기쁨을 되새기게 한다. 그 이후의 두 남녀 소식이 몇 차례 반복해 뉴스가 됐다. 이처럼 한 장의 사진이 넓은 공감대를 이루며 사랑 받는 조각상도 드물 것이다. 그들이 타임스스퀘어로 되돌아오면 뉴욕 시민들과 함께 행복감에 젖겠지.

일본대사관을 마주보고 말없는 메시지를 전하는 어린 소녀의 절제된 호소가 들린다. 일본대사관에서 그 조각상의 자리를 옮겨달라고 하였다던가. 그들이 소녀를 바라보기 얼마나 힘들까. 유난히 춥던 서울의 겨울, 그 소녀가 춥겠다고 염려하던 중, 어느 날의 뉴스에서 오버코트 입고, 모자 쓰고, 목도리 두른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바로 우리들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위안부 소녀상인 평화상을 찾아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를 플룻으로 연주하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물론 일본군 위안부 사건에 대한 사과의 뜻이다. 아직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하였지만, 한 가닥의 위안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게 사람의 세계가 아닌가.
독재자들의 조각상이 수모를 겪는 모습을 가끔 볼 때마다, 시대의 변천과 함께 죄값에 대한 보복이 이루어지는 인과응보의 인간사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들은 부르짖을 듯하다. 왜 내 조각상을 만들었느냐고. 조각상이 반영구적인 건조물인 까닭에 희비극이 엇갈린다.

앞에 예거한 조각상 셋이 소리친다. 북한의 말탄 영웅들 왈 “나는 너희를 지킬 것이다. 이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 타임스스퀘어에서 키스하는 청춘 남녀들의 젊은 목소리 왈 “전쟁을 피하자. 이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 번째로 위안부 소녀상 왈 “...” 왜 말이 없을까. 그 소녀는 가슴이 답답하여 말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조각상 셋 중에서 누구 목소리가 제일 클까?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메시지 전달 능력을 말한다. 다시 물으면, 조각상 중에서 엄청나게 목소리가 큰 것은 누구일까. 아무래도 입을 꼭 다물고, 다소곳이 앉아,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는 소녀상일 것이다. 그 소녀의 소리 없는‘외침’이 사람의 폐부를 찌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알라. 소녀들의 파란 꿈을 송두리째 빼앗고 짓밟아버린 너희들의 사과를 기어이 듣겠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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