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친구와 종교관계

2012-02-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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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자유기고가)

나의 아픔, 외로움, 기쁨 모든 것을 나와 같이 슬퍼하고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이가 친구다. 나와 신앙, 종교, 신념과 사상이 달라도 그저 친구이기에 모든 것을 같이 할 사람이 친구가 아닐까? 어릴 적, 내 안에 아무런 사람들의 생각과 신념이 들어있지 않을 때,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친구, 그런 친구는 수 십년이 지난 후에 만나도 반갑다. 어릴 적의 기억과 사랑으로 인해 가슴이 저려오기도 한다. 종교도, 학식도, 사회적 지위도 인간적인 이기심도, 모두 그 사랑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순수한 인간과 인간의 만남, 그 속에서 친구가 생겨난다. 세상 속의 어지러운 불순물들이 들어가면, 그런 친구관계를 만들 수 없다.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관계는 그저 같은 생각과 목적, 간혹은 같은 종교로 인해 껍질로 맺어지는 관계뿐일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종교나 사상으로 인해 친구를 버리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망각한 것은 아닐까? 인간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성경말씀의 의미를 기독교인들조차도 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신보다 인간이 우선이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먼저 인간됨을 구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 것 같다.


사람들은 친구를 만들지도 않고, 친구가 되어 있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의 신을 전하려고 한다. 신의 절대적 능력을 믿는다고 하면서 상대의 인격이나 지식, 삶의 환경조차도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통해 드러내는 신의 모습은 친구됨과 그 친구사이의 사랑을 통해서이다. 누군가를 친구가 아닌 원수로 여기거나, 불쌍하게 버려진 하나의 영혼, 혹은 그저 무지한 무리의 일
부로 여기거나 할 때, 그를 통해 보여지는 신은 진짜 신일 수가 없다.

사람들은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 예수님이 인간의 친구가 되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진정한 친구됨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친구의 사랑을 그 관계속에서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준 모든 가면을 벗고, 인간의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면,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 서로 친구가 먼저 되고 자신이 믿는 신념도, 생각도 종교도 나눌 때, 진실이 그 관계 속에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신의 존재를 온전히 찾으려면, 우리는 먼저 인간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 그래서 친구가 되는 것. 그 길이 우리 삶속의 모든 진실을 찾는 열쇠일 것이다. 가끔씩, 세상의 가치속에 살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도, 감동을 주는 인간의 관계가 형성된다. 인간은 종교와 사상, 이념 등을 넘어서서 친구가 될 수 있다. 어떤 종교나 사상의 추종자가 되기 이전에 인간이 되어야 진정한 신자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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