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커피값 넣을 병

2012-02-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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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찻잔에 커피를 따르던 손이 멈칫하더니 그대로 이어진다. A는 찻잔을 들고 가면서 한 번 뗑그렁 소리를 남겼다. 다음, B는 옆에 놓인 병을 보고도 모르는 채 커피를 마신다. “오늘부터 커피 값을 내는구나” C는 커피를 따르고 뗑그렁 소리를 두 번 냈다. 이 광경은 어제까지 마음대로 마시던 커피팟 옆에 ‘커피값’이란 빈 병이 놓인 까닭이다. “그래, 얼마를 내지?” 아무 말이 없으니 자유로 생각하란 뜻이겠지. 다만 알고 싶은 것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을 뿐이다.

“커피와 종이컵이 너무 헤퍼요. 반이 남은 커피도 그냥 버리고, 종이컵이 여기 저기 널려있어서...”“그래서 생각한 것이 돈을 받기로 했어요.” “그럼, 얼마를?”“마음대로” 그들은 처음부터 커피값을 받아서 커피코너를 경영할 의사는 없었다. 하지만 즐거운 이 코너가 오래 계속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우리는 ‘공짜’ ‘무료’라는 말에 약하다. 광고문에는 이런 말들이 흔히 눈에 띈다. 한 개 사면, 한 개는 공짜. 한 벌 사면, 한 벌은 무료, 나중에는 2명이 등록하면 세 번째는 무료까지 있다. 무료라는 말이 공짜 보단 어감이 좋지만, 그러나 생각할 문제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또 공짜나 무료의 참뜻은 무엇인가? 공짜나 무료가 우리들의 생활감정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이 세상이 공기, 계절, 육지와 바다, 산천초목의 자연현상 말고 공짜나 무료가 있는 것일까? 혹시 ‘무료처럼 비싼 것이 없다’는 경우는 없을까?


요즈음 다리를 지나다니는 통행료가 너무 비싸졌다고 말한다. 본래 통행료는 다리 건설비용을 충당한다지 않아요? 아주 오래 전에 건설된 그 비용이 아직도 모자라겠어요? 다리 보수비도 계산에 넣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싼 통행료와, 하루 다리를 통행하는 차의 수효를 생각한다면 너무 비싼 것 같아요. 그럼 나머지는 다음에 건설될 다리의 건설비로 예치한다면...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내일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치를 본 것이다.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가 전에 살고 간 사람들의 문화유산으로 살고 있듯이, 우리도 다음 세대를 위해 문화유산을 남기기를 바란다. 먼 앞을 내다보지 않더라도, 바로 내 뒤에 올 사람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 큰 일이 아니더라도 생활주변의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그 일이 미래로 이어진다.소풍비용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그러면 점심대를 따로 모으지 않아도 되겠네요”“아니지요, 그 분 말씀이 종전대로 거두기로 하고, 찬조금을 주시겠대요” 찬조금을 내는 분의 의도는 명확하다. 공짜나 무료는 없다는 것이다. 다 같이 돈을 모아 여럿이 즐기자는 뜻이다. 그렇다면 찬조금의 용도는, 장소 대여비, 주차비, 게임비, 상품대...등 기타 비용 전액을 쓰고,나머지는 내년을 위한 비축금으로 남긴다는 설명이다.

공중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는 일, 놀이터의 뒷처리를 하는 일, 전철이나 버스 사용시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일, 가게 상품을 손상하지 않는 일, 도서관의 규칙을 지키는 일, 식당에서 식품을 남기지 않는 일, 학교 비품을 바르게 사용하는 일, 관공서에 비치된 서류를 아껴서 사용하는 일, 공원이나 유원지에 비치된 물건들을 차례대로 활용하는 일...등은 신변에 있는 작은 일들이
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놀랍게도 미래로 이어진다. 또 어른들이 하는 일이 어린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어진다.너도 나도 자유를 만끽하면서 삶을 거리낌없이 즐기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반드시 여럿이 함께 즐기자. 주위에서 방해꾼 노릇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의 삶을 즐겁게, 뜻있게 돕고 있다. 이들과 함께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때 우리 자녀들이 더욱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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