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러브 스토리

2012-02-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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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14일 밸런타인 데이를 앞두고 상가는 물론 TV에서 온갖 상품을 다 홍보하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 초콜릿과 붉은 장미의 판매 마케팅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전 세계의 연인들은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선물을 하고 추억의 이벤트를 하려 한다. 죽음도 겁내 하지 않은 연인의 대명사로 단연 ‘로미오와 줄리엣’이 선두에 선다.

영국의 국민작가 셰익스피어가 이태리 베로나를 무대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은 1597년 초판된 이래 연극, 드라마, 영화, 오페라, 발레 등 각 장르에서 지금까지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사랑에 빠진 전세계의 젊은 연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로맨틱한 장소가 있다. 이태리 베로나의 ‘줄리에타의 집(Casa di Giulietta)’이다. 베로나 시 중심가에 있는 집 입구의 양 벽에는 한국어를 포함한 각국 언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낙서가 가득 쓰여 있고 줄리엣 청동상 뒤의 철조망에는 철컥 잠긴 자물쇠들이 잔뜩 걸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있다. 로미오가 벽을 타고 올라간 줄리엣방의 대리석 발코니도 있어 젊은 남녀는 그곳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의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앞마당에 있는 청동으로 된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이 유난히 하얗게 반짝이는데 이는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는 떠도는 말 때문에 너도 나도, 심지어 사이가 좋아 보이는 중년부부도 결사적으로 차가운 청동상의 가슴을 만지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당대의 런던 극장가에서는 이탈리아 이야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이태리를 배경으로 한 희극을 다수 선보였고 이 중 하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집이 실제로 줄리엣의 집은 아니라고 한다. 줄리엣의 집부터 인근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지하의 줄리엣 무덤까지 베로나시가 관광활성화를 위해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이곳에 오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대리만족 하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다. 어떤 주제보다도 사랑을 다룬 고전 소설은 지금도 읽혀지고 수시로 영화화 되고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등이 그렇다. 물론 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도 성춘향과 이몽룡의 러브 스토
리 ‘춘향전’이 있다.

실제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러브 스토리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36년 12월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과 도움이 없이는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 나갈 수가 없다”고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한마디를 발표하고는 영국 왕좌를 포기한 윈저공 에드워드 8세와 두 번 이혼 경력을 지닌 심프슨 부인의 사랑이다.그외 엘리자베스와 리처드 버튼의 두 번의 결혼과 이혼, 퍼스트레이디에서 선박왕 부인이 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은막의 여왕으로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 등 이 세기의 커플들은 해로했거나 비극으로 끝났다.때로 윈저공도 사람인데 35년간 함께 살면서 후회한 날도 있었겠지 싶다. 아무리 운명적인 사랑이라도 세월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주저앉기 마련이다.

젊어서는 비록 비극으로 끝날지라도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소원을 갖게 된다. 비극도 절망도 죽음도 모두 수용하는 나이인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보라. 그런 사랑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대리만족하면 그만이다. 일생일대의 러브스토리는 남이 하는 것이다 보니 TV 앞에 수북히 쌓이는 것이 ‘애수’, ‘카사블랑카’, ‘러브 어페어’, ‘러브 스토리’ 같은 옛영화 CD이다.그것이 늙어가는 증거라도 ‘러브 스토리’는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과제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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