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 밸런타인의 날

2012-02-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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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효 섭 (아동문학가/목사)

2월 14일은 성 밸런타인의 날(St. Valentine’s Day)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사랑의 고백이나 편지를 전달하는 전통이 있다. 꽃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기도 하다. 성 밸런타인은 4세기 로마에서 살았던 사제이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 지어다.(전도서 9:10)” 하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아무 재주도 없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는 편지 쓰기를 결심하였다. 병든 자, 외로운 자,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알아내어 사랑과 위로의 글을 적어 우편제도가 없는 시대임으로 직접 배달하였다. 그가 순교한 날인 기원 270년 2월 14일을 사랑의 날로 지키는 전통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성 밸런타인의 날’은 달콤한 사랑의 날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사랑의 실천을 다시 한 번 결심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사랑이란 흙은 상한 뿌리를 아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슬픈 과거를 기쁨으로 바꾼다.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서 즐거움으로 바꾼다. 증오의 어제를 이해의 오늘로 바꾼다. 사랑은 인간을 부유하게 만들지는 않아도 가치 있게 만든다. 사랑은 인간을 유명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아름답게 만든다. 사랑은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옆집 사람과의 문제이며, 사랑은 내일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일이고,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나의 손과 다리를 움직이는 문제이다.


아마추어(amateur)란 말이 있다. 돈을 받고 직업적으로 경기를 하는 소위 ‘프로’가 아닌 선수를 가리킨다. 본래 이 말은 라틴어의 amour에서 나왔는데 사랑한다는 뜻이다. 즉 사랑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자가 아마추어이다.
돈 때문이 아니라, 상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 경기와 그 일과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마추어이다. 그러기에 ‘아마추어 정신’이라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깨끗하다.

사랑이란 내 마음이 쏠리는 것이다. 마음이 쏠리지 않고 사랑할 수는 없다. 그를 위하여 나를 잊어버리고 그를 위하여 나는 죽고 그를 위하여 내 행동의 우선순위를 결정짓는 사랑이다. 사랑은 아픔이다. 나를 십자가에 매다는 것이 사랑이다. 아픔을 빼놓은 사랑이 있다면 탈을 쓴 거짓 사랑이 아니면 틀만 갖춘 극히 형식적인 사랑일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사랑을 연모(戀慕)란 말로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연모는 정(情)을 동기로 한다. 즉 사랑한다는 것은 정을 주고 받는 것을 뜻하였다. 인간관계를 정으로 맺는 것은 의리, 체면, 인정 등과 혼돈되기 쉽다. 춘향전을 위시한 한국의 고전문학에서 사랑이 정과 동일시되어 해석되는 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그러나 정은 사랑의 의미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곧 사랑은 아니다. 인정이나 동정이 받는 사람에 따라서는 무시나 멸시 같은 반대의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의 수치를 가려주는 옷이며 화음(和音)이다. 정말 사랑할 때 상처가 아물고 진짜로 사랑할 때 엄청난 용기가 솟는다. 사랑은 정열이 아니라 나란히 걷는 꾸준한 여행이며 날씨를 극복한 항해이다. 사랑은 황홀보다 더 깊고, 육체의 접촉보다 더 높으며, 결혼식의 서약보다 더 넓다. 사랑은 손실 속에서 더 강하고, 양보 속에서 함께 승리하며, 주는 쪽이 받는 쪽보다 더
기쁘다. 사랑은 정직이며 진실이다. 가면(假面)들끼리 서로 사랑할 수는 없다. 사랑은 내 잔을 비워 남의 잔을 채우는 것이다. 사랑은 차가운 눈을 밟아 길을 만드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입술들에게 환희의 노래를 주기 위하여 가끔 슬픔을 삼킨다. 사랑은 때때로 무거운 짐을 지게 한다. 다른 어깨들에게 종달새의 날개를 붙여주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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