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요커라면…

2012-02-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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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한인사회와 한국 뉴스 속에 파묻혀 사는 한인이 오랜만에 맨하탄에 나가 브로드웨이 쇼를 한 편 보고 나면 내가 미국에 사는 게 맞구나 하게 된다. 브로드웨이 쇼는 그만큼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지극히 대중적이고 미국적이다. 오래된 불경기는 문화공연에 심각한 타격을 주어 절대로 공짜표 안주던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가 뮤지컬 표 한 장을 사면 한 장을 공짜로 주고 있다.

브로드웨이 주간인 지난 1월17일부터 오는 4일까지 22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연극 중 티켓 한 장을 사면 두장을 준다.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저지 보이스, 메리 포핀스 등 모두 다 좋은 작품일 뿐 아니라 화제의 신작 스파이더맨도 포함되어 있다. 오프브로드웨이 주간은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2일까지로 애비뉴Q와 렌트 등 오프브로드웨이 작품 40여편도 한장 구입시 두장을 준다.이 중 뉴요커라면 한번 봐둘만한 뮤지컬로 뉴욕을 무대로 한 스파이더맨과 렌트를 추천한다. 스파이더맨은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고교생 피터 파커가 초능력의 사나이가 되어 악당과 싸우며 여자 친구 메리 제인을 지켜내는 이야기다. 1962년 만화로 처음 태어난 스파이더맨은 대다수 사람들의 어린 시절 추억 속에 깃들어있다.


뮤지컬 공연 전부터 스파이더맨이 떨어져 부상 당했고 개막 후에도 비평가의 혹평을 받으며 수차례 연기되다가 개봉되었는데 지난 1월 3일 드디어 미 티켓판매 신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 중이다. 관객석 2, 3층까지 휙 휙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이 악당 고블린 위에 올라타고 싸울 때는 자기머리 위에 떨어질 것 같아 관객들은 제 머리를 감싸기도 한다. 빨갛고 파란 복장의 스파이더맨이 하늘을 날 때 뽑아내는 흰 종이 거미줄은 객석 위로 마구 휘날려 꼬마들은 줏느라고 정신이 없다.맨하탄 고층 빌딩숲이 무대 위에서 내려오고 땅 밑에서 솟아오고 측면으로 곤두서는 등 다양한 입체적 무대 세트는 웅장하다 못해 입이 딱 벌어진다. 그리고 오프브로드웨이 작으로는 렌트가 볼만 하다.

90년대 맨하탄 이스트 빌리지의 로프트에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 이야기로 1996년 초연되어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막을 올렸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렌트 걱정하는 소시민이지만 가수와 배우, 다큐멘터리 감독 지망생으로서 꿈을 잊지 않는다. 동성애와 마약중독, 에이즈 등 미국이 안고 있는 삶의 애환도 돌아보게 한다.이 공연을 보다보면 배가 고프고 손이 시리고 발이 시려지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따스해진다. 미국의 젊은이들, 우리의 자녀들이 저렇게 고민하고 갈등하고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애쓰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작품 모두 나와 이웃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하늘을 나르고 싶은 꿈, 약자이고 평범한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강해져 사랑하는 사람, 가족을 보호하고 지키고 싶은 꿈을 우리대신 무대에서 실현하고 있다.렌트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집값과 생활고에 짓눌리고 시달리지만 그래도 뉴욕에서 살아남고자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비록 사는 것이 힘들지만 대도시 뉴욕에서 우리 자녀들이 씩씩하게 자라고 있고 ‘걱정하지 마. 사는 것은 다 그런 거야’하는 위로, 뉴욕 최고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건지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이민자들의 바람이 그런 것 아닌가, 부모들은 서툰 언어에 어렵게 적응하며 살다가 종내 삭아지고 스러지지만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이곳에서 교육받은 자녀들은 주류사회에서 주눅들지 않고 제자리 잡는 것, 그것이 최고의 소망이 아닐까. 살다보면 일 년에 한번쯤은 이런 뮤지컬을 만나고 싶다. 브로드웨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애써 기회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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