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통속에 피는 사랑

2012-01-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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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앤패밀리포커스 대표)

내가 만나는 재소자들 중에는 범법을 이유로 무조건 추방 위기속에 놓여있는 이들이 많다. 한국 같으면 청소년기에 한때 장난이 지나쳐 문제가 되었거니 한 일들이 불거져 교도소에 간 재소자들도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주에도 출감한지 15년이 되어 아내를 만나 아들을 낳고 열심히 살아가는 출감자의 이민국 재판을 위해 법원에 증인으로 서게 되었다. 15년동안 그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을 만큼 청소년기의 한때 실
수를 뼈저리게 후회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의 삶에 아킬레스 건이 되고 있는 재판의 마지막 고비의 시간이었다. 15년동안 땀 흘려 번 돈을 모두 변호사와 재판준비 비용으로 거의 다 쓰다시피 한 그의 삶,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엎고 쫓겨 내어질지도 모를 그 불안과 스트레스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의 심경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자신이 뿌린 씨를 자신이 거두어야지... 라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쉽게 정죄해 버리고 남의 일로 생각하기 쉬우리라.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부모인 우리는 절대 남의 일이라고 쉽게 속단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의 부모도 절대 자신의 사랑스런 아들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 문화가 다른 이곳에 와서 사는 우리에게는 절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새벽 6시부터 준비해서 저녁 6시가 지나 끝난 긴하루...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이 동행한 가족, 친지, 교회식구들 우리는 판사가 누구를 먼저 호명할지 몰라 점심도 거른 채 그렇게 온종일을 시달리다 보니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아이를 돌아보니 1살도 안된 아기가 낮잠시간, 놀이시간, 수유시간도 그리고 환경도 엉망인데도 마치 아빠의 어려움을 아는 듯 찡얼대지도 않고 잘 견뎌준다.
어른인 나는 마음이 안쓰러워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마음이 쓰이는 쪽은 아이엄마다. 새벽부터 아이를 가슴에 묻고 법원문에 들어선 그녀는 얼굴에 표정이 없다. 그러다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울기 시작한다. 그러기를 몇 번... 나는 얼마나 속이 상하면 저럴까 싶어 말도 못하고 그저 그녀의 손만을 주물렀다. 그러더니 결국 오열처럼 울음을 터뜨려 우리 울음까지 터뜨리게 하고 말았다. “지난 3여년간 남편이 추방 문제 때문에 힘들게 지냈을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는데 막상 오늘 하루종일을 함께 견디면서 이렇게 지옥같은 상황을 견뎌내고 있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남편에게 철없이 투정부리며 그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함께 해주지 못했다며 가슴 아프게 울어대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 못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들은 겪지않는 괴로운 시간을 지내는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일 수 있지만 이렇게 남편의 일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해주며 깊이 함께 해주는 사랑의 눈물을 흘리는 부부는 의외로 많지 않은 일이지”라며 그들이 함께 하는 어려움속에서 잉태되어지는 진주 같은 사랑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어루만져 주었다. 눈물속에 피는 꽃처럼, 고통속에 만들어지는 진주처럼 아름다운 사랑은 돈으로도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살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아름다운 인생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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