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토벤의 편지

2012-01-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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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지난 11일 베토벤(1770~1827)이 거친 자필로 생활고와 질병의 괴로움을 토로한 친필 편지가 독일에서 공개됐다고 영국 BBC 방송이 보도,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이 방송에 따르면 베토벤은 이번에 공개된 여섯 쪽 분량의 편지에서 휘갈겨 쓴 글씨체로 “나의 낮은 봉급과 질병 탓에 인생이 괴롭다”며 작곡가인 프란츠 안톤 슈톡하우젠에게 자신의 ‘장엄미사’ 곡을 받아줄 사람을 물색해 달라고 도움을 구했다.베토벤의 어수선한 글씨체로 된 편지를 전시할 독일 뤼벡의 브람스 협회측은 “베토벤이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 편지에 남아있다”면서 그의 생각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역사적 가치를 부여했다. 또 이 방송은 1823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면 이 편지 한통이 10만 유로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보도했다.

10만 유로라니, 환율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13만 달러는 넘지 않는가. 이 돈이면 베토벤은 2, 3년은 먹을 것, 입을 것, 난방비 걱정 없이 자신의 음악세계에 푹 파묻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낸 천재인 그는 살아생전 생활고에 허덕였고 후세의 평범한 인간들이 그가 남긴 편지 한통에 가격을 매기고 있다. 또한 평범한 우리 이민자들은 악성(樂聖) 베토벤이 생활고에 시달렸고 그도 인생이 괴로웠구나 하여 그가 더욱 살갑게 느껴지고 있다.
슈베르트, 모차르트, 쇼팽 등 뛰어난 음악가들이 살아생전 다 가난했지만 베토벤은 특히, 32세인 1802년부터 음악가에게는 치명적인,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세상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명곡들을 작곡했다.


유럽 여행 중 가장 감명 깊고, 영원히 잊지 못하고, 큰 충격을 받은 곳이 바로 독일 본에 있는 베토벤 생가이다.본 시내 중앙역에서 걸어 10분 거리인 골목에 있는 생가의 3층에 베토벤이 태어난 다락방이 있다. 작은 유리창 2개가 있는 마루방에는 베토벤 흉상이 덩그러니 하나 놓여있을 뿐이다. 침대
하나 들여놓으면 옴짝달싹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비좁고 누추하다. 방 입구의 협소한 복도에는 베토벤 사후 12시간 뒤에 떠놓았다는 데드 마스크도 전시되어 있다. 마치 하녀의 방처럼 좁고 외진 곳에서 태어난 그가 사람의 마음을 폭풍처럼 뒤흔들고 산더미같은 파도의 물결을 타게 하는 아름답고 웅장한 곡들을 작곡했다니, 말을 잊게 하는 감동을 준다.

기념관이 된 그곳에는 유품과 사용한 악기, 초상화, 악보 등 여러 전시품이 놓여있는데 무거운 노란 금속으로 된 보청기가 눈에 뜨인다. 커다란 나팔 모양이 소리를 모아 좁은 관을 통해 귀에 전달하는 구조로 된 이 보청기는 얼마나 크고 우악스러운 지 아마 그 무게가 머리를 짓누를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22세까지 살다가 빈으로 갔는데 이후 육체적 고통과 답답함 속에서 ‘운명’, ‘전원’, ‘합창’ 등 교향곡을, 피아노 소나타 ‘월광’ 등을 작곡했다.베토벤은 가장 열악한 조건 속에서 개인의 의지로 운명과 싸워 이겼다. 그것도 복수가 아닌, 세상 모든 이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는 멋진 승리로 말이다. 우린 물론 베토벤 같은 천부적 재능은 없지만 이민생활을 개척하려는 의지와 노력, 강한 정신력은 지니고 있다. 그의 가난과 고통을 떠올린다면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아메리칸 드림은 못 이룰지라도 목에 거미줄은 치지 않을 것이다.

오는 23일은 한국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다. 지난 1월 1일에 새해를 맞이했는데 다시 새해를 맞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새해에 덕담을 나눈다. 1월 1일에 이미 만나는 사람마다 말했다고 해도 다시 하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한 한 해 되세요”, 좋은 말은 자꾸 해도 괜찮다.우리도 베토벤처럼 인생이 괴롭고 무섭지만, 새해에는 더욱 더 노력하여 가난과 고통을 가볍게 이겨보자. 베토벤이 남긴 말이 있다. “훌륭한 인간의 특징은 불행하고 쓰라린 환경 속에서도 끈기있게 참고 견디는 것이다” 작곡가 이전에 한 위대한 인간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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