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겁 없는 아이들

2012-01-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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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요즘 한국에서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끔찍한 10대 폭력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특정 동급생을 ‘왕따’시켜 물고문을 자행하고 돈을 빼앗는다. 심지어 초등학생 꼬마들도 소녀를 집단 성폭행한 것으로 보도돼 큰 충격을 안겨줬다. 또래들의 무서운 폭행에 못견뎌 자살하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이 시대 한국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남자 아이들이 티격태격하다가 “한판 붙자”며 학교 운동장 구석이나 동네 야산에 올라가 급우들이 지켜보는 가운에 한바탕 격투를 벌였다. 싸움이 끝나면 악수를 나
누고 화해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범죄조직처럼 집단으로 폭력행위를 일삼는다. 우리들의 청소년 때와 너무 달라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전문가들은 폭력을 일삼는 아이들이 대개 결손가정에서 자랐거나, 부모가 있어도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들이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요즘은 TV와 인터넷에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악성 정보들이 범람한다.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다보니 청소년들이 ‘무서운 10대’ ‘겁 없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변하고 있다.

미국의 형편도 비슷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10대 가운데 매일 5명이 자살하고, 21명이 알코올 중독으로 생명을 잃고, 8명의 미혼모가 생겨나고, 20명이 학교를 중퇴한다. 오클라호마 의대의 마크 샤핀 교수(소아과)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난 2009년 전국 29개주에서 발생한 아동성범죄의 35.6%가 다른 미성년자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범인 가운데 12~14세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
다고 지난 11일 발표했다. 청소년들의 이런 비행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인성이 황폐해지면 자연히 폭력행위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좋은 행실을 몸에 배도록 가르쳐야 한다. 실제로 아동문제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좋은 품성은 모두 세살이전에 형성되므로 아이들이 어릴 때 어른들이 좋은 말씨와 바른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대철학자 플라톤도 세 살 버릇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아이들이 나무에서 도토리를 따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얘들아, 그런 짓 하면 못 쓴다” 라고 주의를 줬다. 한 아이가 시큰둥한 말투로 “선생님, 하찮은 공기놀이인데 왜 화 내시나요?”라고 대꾸했다. 그 말을 들은 플라톤은 “얘들아, 나무에 오르는 게 버릇이 될 수 있다. 버릇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란다” 라고 또 다시 타일렀다.

요즘 한국 TV에 ‘K 팝 스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음악과 춤을 겸비한 꿈나무들을 뽑아 이 시대 한류를 선도하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어린이들이 비욘새의 목소리를 흉내 내고, 마이클 잭슨처럼 온몸을 흔들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왜 이런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순수해야할 어린이들에게 공연히 경쟁심리를 부추겨 볼꼴 사나운 어른처럼 만들고 있다. 무대에 서기만 하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돈도 엄청 벌수 있다는 생각에서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이 프로그램에 내모는 모양이다. 예전에 동네에서 또래들이 술래잡기, 고무줄넘기, 땅 따먹기 등 놀이를 즐기며 해질 때까지 뛰놀았던 우리들의 어릴 적 시절과 분위기가 너무 많이 달라졌다. 자녀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들답게, 순수하게 자랄 수 있도록 놔두면 안 될까?

정부당국은 급기야 교내 왕따문제를 척결하기 위해 초강력 규제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자녀교육의 우선 책임자는 학교나 법규제에 앞서 가정의 부모이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여류문인이자 화가이지만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인성을 가르친 현모양처였다. 공동묘지와 시장 부근 동네에서 글방 이웃으로 세번 이사하며 아들 맹자를 주자학의 대가로 키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부모들이 두고두고 새겨야 할 자녀교육의 영원한 모델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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