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안과 두려움

2012-01-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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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상을 살면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불안과 두려움이다. 불안과 두려움은 일종의 정신적인 문제 중 하나다. 불안과 두려움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불안과 두려움의 반대는 행복과 편안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해 지기를 원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런 바람은 인간의 본능에 속한다.

사람에게서 불안과 두려움을 빼 버린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살아 있는 한 불안과 두려움은 떨쳐 버릴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속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동전의 한 면에는 행복감이 있고 또 다른 면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그러니 사람이 죽기 전에는 피할 수 없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 행복감과 불안감이다.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가로 등단한 최인호(66)씨. 그가 쓴 작품들(‘상도’ ‘해신’ 등)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특히 월간 <샘터>에 34년 동안(1975년 시작) 연재한 소설 ‘가족’은 한국의 최장 연재소설로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애증, 갈등과 연민을 파헤친 가족의 관계를 새롭게 일깨워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불신자였던 그가 가톨릭에 귀의한 것은 1987년이며 ‘가족’의 집필을 중단한 것은 그에게 침샘암이란 암이 발병(2008)한 후다.

암 투병 중 그가 겪은 고통과 불안은 그를 더욱 종교인이 되게 했다. 그가 최근 기고한 글 중에 “육체의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끊임없는 걱정과 두려움이었다. 하루 24시간 매 순간이 마음의 고통이었다”고. 그는 불안을 고민해 보니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안을 없애는데 도움이 된 불교경전 ‘금강경’과 중국 당나라 선승 황벽의 말 그리고 신약성경 마태복음(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6장34절)을 소개했다.

그는 금강경엔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와 황벽의 말 “과거는 감이 없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다”는 구절 등을 통해 불안을 떨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한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인 불안은 없앤다 해도 항암치료로 인한 육체적 고통만은 피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덴마크의 실존철학자 키엘 케골은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말했다. 그것은 죽음과 죄와 투쟁과 고독과 절망과 방황과 불안 등이다. 그는 말하기를 절망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며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라 했다. 그리고 인간에게 방황과 불안이 있음으로 인간은 존재한다고 역설했다.인간의 존재가치가 살아있음의 상황이라면, 살아있음에 따라오는 불안과 두려움 등의 모든 영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삶이다. 즉 삶 자체가 존재요 존재 자체가 삶일 때 그 과정에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중에 하나가 불안과 두려움이다. 그러니 두려움과 불안은 삶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사람들이 가장 두렵고 불안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그 불확실성의 하나가 죽음이며 또 하나는 죽음 그 이후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사람을 사색가와 철학자로 만든다. 죽음 후의 설정이 어떻게 될까, 혹은 “죽은 후에 지옥이나 천국에 가는 걸까”등의 질문은 꼭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장자의 ‘지북유’(知北遊)편에 보면 “삶이란 반드시 죽음을 뒤따르게 하며 죽음은 삶의 시작이 된다. 사람이 사는 것은 기(氣)가 모이기 때문이며, 기가 모이면 삶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죽음이 된다”는 말이 있다. 삶과 죽음은 호흡에 달려 있다. 호흡의 멈춤이 죽음이요 호흡의 계속이 삶이다. 즉 불안과 두려움은 호흡 그 사이에 존재한다.

최인호는 말한다. “과거를 걱정하거나 내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날개를 가진 거룩한 천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종교에 깊이 귀의해 불안을 떨쳐버린 자만이 할 수 있는 소리다. 그것은 신의 소리가 아니요 인간의 소리다. 불안과 두려움은 우리네 삶의 동반자요 반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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