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편지

2012-01-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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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어린이들이 우루루 사진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나와 함께 새해맞이를 하려고 왔다. 해마다 어린이의 수효가 늘어나거나, 그들의 성장한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그들은 한국에서, 일본에서, 미국 각처에서 모여와 제각기 재잘재잘 이야기를 한다. “나 이만큼 컸어요”“나 책을 읽어요”“내 새동생 예쁘지요?” 그들이 멀게는 30년, 20년 전에 가르친 학생들의 자녀들이니 이렇게 대대로 이어지는 인연은 특별하다.

한국 내의 옛 학생들은 이미 은퇴하였고, 여기 사는 학생들의 자녀들이 한창 자라고 있다. 옛 학생들의 정기적인 연락은 드물지만, 그래도 가끔 소식을 알려준다. 새해맞이를 함께 하는 그룹은 매년 정기적으로 자녀들의 사진을 보내 와서 가족이 함께 옛정을 이어간다.요즈음처럼 서로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전하는 방법이 다양한 시대가 전에는 거의 없었다.


요즈음은 느낌보다 손이 먼저 마음을 대신하여 기계를 움직인다. 그러나 손글씨로 전하는 사랑만큼 정다운 표현은 없을 듯하다. 글자 하나하나가 따뜻하며 어느덧 소리로 바뀌면서 속삭인다. 개성이 뚜렷한 글씨들은 바로 그들 자신으로 바뀌면서 독특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기계가 전하는 메시지에는 이런 특성이 없어 섭섭하지 않은가.

짧게 자주 보내오는 편지는 일상의 대화가 이어져서 좋고, 가끔 보내오는 편지는 궁금증을 덜어줘서 좋고, 새해맞이로 보내오는 편지는 새로운 희망을 줘서 좋다. 이런 편지 왕래의 생명력은 얼마나 길까. 필자의 귀한 보물은 거의 40여 년 간 계속되는 어느 부모님의 연하장이다. 그것이 몇 글자 적은 인사가 아니라, 정성껏 쓰신 손글씨 편지인 까닭이다. 한 때 그 분의 자녀를 담임했던 것뿐인데 두고두고 감사하시는 마음이 긴 세월 이어지고 있다. 바라건대 영원히 이어질 수는 없을까 하고 부질없는 욕심이 생긴다.

학생과 교사가 매일 편지 교환을 하거나, 자녀와 부모가 매일 편지를 주고받으면 어떨까. 편지 공책을 정해놓고 매일 거기에 서로 한 줄씩 글로 대화를 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것 같다. 몇 학생과 시도해본 결과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늘 지은 짧은 글은 퍽 재미있어요”“그거 만화책에서 얻은 아이디어에요”“시간 중에 졸고 있었지요?”“어제 잠을 못 잤어요”“오늘은 숙제를 꼭 하세요”“네” 이런 학생과 교사이면 좋겠다. “송이가 집안을 청소해서 고마워요”“엄마, 매일 청소할게요”“동생하고 싸우지 말자”“누나는 언제나 동생한테 저 주어야 해요?”“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시험점수가 나빠요”“지난 일은 잊어버려요. 다음에 잘 하면 되니까” 서로 말로 해도 좋지만, 글로 쓰면 마음을 다스릴 시간을 벌고, 글쓰는 기술도 늘어나지 않는가. 오래 전에 어머니와 아들이 몇 년 동안 계속하여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의 다른 나라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 내용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정이 나날이 두터워지는 과정을 역력히 보여 주었다.

오늘의 세태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 하면서 과속으로 달리고 있다. 거기에 섞이는 아날로그 방식은 지나간 시대의 유물인가. 사랑의 성장이나, 격려나 타이름 등은 감정이 숙성할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런 나쁜 일을 하였다니 가족이 부끄럽다”대신 “그렇게 하기 전에 엄마 아빠에게 한번 이야기를 하면 좋았을 걸. 앞으로는 엄마 아빠가 널 더 사랑할게” 이렇게 위로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시간이 주는 혜택이고, 아날로그식 생활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자녀들에게 기성복이 아닌 맞춤옷을 입히고 싶다면, 교육이 맞춤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세태에 휩쓸리지 않으며, 내 자녀를 똑바로 보고 판단하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은가. 자녀의 성적에만 구애되는 부모가 아닌, 자녀의 소질을 키워주는 눈이 밝은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은가. “엄마, 아빠 날 얼마나 사랑하세요?”“하늘만큼, 땅만큼” 이런 편지가 오가는 가정 분위기는 만들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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