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안개꽃

2012-01-0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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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혼자서는 웃는 것도 부끄러운 한 점 안개꽃/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이 되고 소리가 되는가/ 장미나 카네이숀을 조용히 받쳐주는/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마름은/ 숨길 줄도 아는 하얀 겸손이여.이해인의 대표 시 ‘안개꽃’이다. 안개꽃은 석죽과의 내한성 한해살이 작은 풀이다. 백설(白雪)처럼 하얀 흰 꽃이 군락을 이루어 양지바른 마당에 무리지어 핀다. 꽃 봉우리가 너무 작고
외모가 단출해서 무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안개꽃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렇게 작고 하찮은 꽃이 장미나 카네이숀을 만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용히 밤을 밝히는 가로등처럼 자신보다 남을 빛나게 해 주는 귀한 존재가 된다. 자기 자신은 영광을 얻지 못했을 지라도 실제적인 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안개꽃이다. 안개꽃은 말하자면 위대한 제2인자(co-leader)인 셈이다. 구약 성경에 보면 안개꽃 같은 ‘co-leader’ 한 사람이 등장한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다. 그는 40년 동안이나 모세의 안개꽃으로 헌신했다. 일이년도 아니고 무려 40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모세를 섬겼다니 참으로 기이하기도 하고 놀랍고 감동스럽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곁에서 40년을 섬기다 보면 수많은 허물과 단점이 발견되기 마련이고 인간관계의 갈등과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달랐다. 이런 문제들을 관용과 인내와 사랑으로 다 뛰어넘고 협력하여 모세를 섬기며 세워주었고 나중에는 모세의 대를 잇는 후계자가 되었다. 그것도 잡음 하나 없이. 여호수아는 정말 멋있는 제2바이올리니스트였고 아름다운 한 송이 안개꽃이었다. 여호수아의 위대성은 안개꽃 같은 겸손과 조연정신(助演精神)에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여호수아의 협력 모델은 이기주의적 발상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의미심장한 교훈을 준다. 특히 요즘 대선을 앞두고 저마다 대통령, 국회의원 병에 걸려 이합집산하면서 상대방을 헐뜯고 넘어트리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는 탐욕적 정치인들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된다. 맨유의 미드필더 박지성의 최고 장점이 무엇인가. 자신보다 남을 먼저 빛나게 해 주는 안개꽃
같은 역할이 그의 장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팀 전체를, 사기를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협력자(co-leader)가 되고자 한다. 그의 목표는 화려한 골 게터(goal-getter)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제1의 게임메이커(game-maker)가 되어 최고의 안개꽃으로 성공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는 다른 선수보다 한 경기당 평균 2-3km을 더 뛰어 다닌다. 누가 골을 넣을 수 있는 더 좋은 위치에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곳으로 볼을 보내주기 위해서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연주하기 힘든 악기는 제2바이얼린이다.”라고 갈파했다. 키케로는 “최고를 열망하는 사람에게 2등은 결코 불명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남다른 용기와 충성심을 가지고 제1인자를 충성스럽게 따르기도 하고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제1인자를 이끌어 간 여호수아 같은 ‘안개꽃 리더’가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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