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장에 다녀왔다

2011-12-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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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

새해 특집 기사 준비를 위해 지난주 브롱스 헌츠포인트의 청과시장과 수산시장을 다녀왔다.

새벽시장은 언제나처럼 약간의 흥분과 묘한 생기를 전해줬다. 사무실과 공장, 매장 등 다양한 삶의 현장이 있지만 분명 시장은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유의 활기참과 매력이 있다.

시장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경제의 출발점이고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또한 평범한 서민들의 삶이 가장 정확하게 나타나는 장소기도 하다. 상인들의 표정과 장보는 사람들의 지갑 두께에서 현재의 경제 상태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그 ‘시장’을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시장은 막상 어떤 장소일까?

이른바 시장만능주의자들, 시장이 모든 것을 알아서 결정해준다며 거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사람들, 연구소 위원들과 경제학 박사들, 명문대 교수들 그리고 언론의 경제 전문가들, 그들은 어려운 이론들과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해 시장만능을 외치지만, 나는 그들이 막상 일생에 몇 번이나 새벽에 일어나 시장을 가봤는지 의심스럽다.

아마도 그들이 말하는 시장은 더 고차원적이고 수준높은 이데아의 세계일 것이다.

뉴요커지의 경제 기자 출신인 존 캐시디는 ‘시장의 실패(How markets fail)’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지배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첫째는 대기업의 독과점이고 두 번째는 기업들이 ‘이익이 아닌 가치’를 생산할 인센티브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들의 영역을 싹쓸이해도 방관하고(아니 방조하고), 금융재벌이 경제활동을 대출로 뒷받침하는 본래의 임무보다 고위험 투기상품 개발과 도박에 연연할 때도 무조건 규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자유시장경제’다.

공항도 팔고 고속철도도 팔고 병원도 영리화하고 우체국도 민영화하고, 모든 것을 공익의 영역에서 떼어내어 시장에 맡겨야만 경쟁력도 생기고 발전한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일까?

‘시장의 배반’ 한국어판을 번역한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의 말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 같다. “인간의 경제적 삶을 다루는 학문에 인간이 빠져서야 어찌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장을 삶의 기반으로 하는 99%의 사람들이 아닌, 시장을 지배하는 1%의 기득권층만을 위한 학문과 정책, 그리고 언론의 프로파간다가 지난 30년간 득세해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하고 바뀔 것이다. 올 한해 우리는 정치적인 독재뿐 만이 아니 경제적인 독재에도 항거하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을 전세계적으로 목격했다.

박원영(경제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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