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 술은 새 부대에

2011-12-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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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얼마전 ‘서프라이즈’ TV 프로를 보다가 정말로 ‘서프라이즈’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과 그에 못지않게 명성을 날린 당대의 천재과학자 니콜라 테슬러가 노벨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됐지만 두 사람 모두 수상을 고사해 엉뚱한 사람이 받았단다. 이들은 상대방의 재능을 인정하기는커녕 라이벌이 기발한 발명품으로 찬사를 받으면 시기심과 적개심으로 마음이 불탔고, 끝내 세계최고의 영예인 노벨상까지도 “그 녀석과는 공동으로 안 받겠다”며 수상을 포기했다는
얘기였다.

시기와 질투에 관한 에피소드는 일일이 다 글로 소개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오죽하면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까지 나왔는가. ‘흥부놀부전,’ ‘콩쥐팥쥐전’과 같은 옛날이야기는 물론 우리가 TV에서 보는 사극들도 시기, 질투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다. 섹스피어의 대표적인 비극 ‘오셀로’도 질투로 눈이 어두워진 장군이 사랑하는 아내를 죽이는 내용이다.
시기심이 얼마나 큰 파멸을 초래하는지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가 있었다.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석권한 ‘아마데우스(Amadeus)’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음악가로 꼽히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교활한 비엔나 왕궁악사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치밀하고 집요한 살해음모로 결국 요절한다. 늙어서 요양원에 입주한 살리에리는 목을 찔러 자살을 시도했다가 죽지 않자 젊은 신부를 불러 자기의 죄를 고해성사한다. 옛날 잘츠부르그에서 온 청년 모차르트를 몹시 질투했으며, 자기가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결국 자기의 질투 때문에 천재가 요절했다며 울부짖는다.

가장 성스러운 책인 성경에도 시기와 질투의 화신들이 여럿 등장한다. 아담의 맏아들 가인은 여호와가 동생 아벨의 제물은 받고 자기 것은 외면하자 아벨을 돌로 쳐 죽인다. 인류역사상 첫 살인의 원인이 시기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야곱은 장자권을 시샘해 쌍둥이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였다. 요셉의 배다른 형 10명은 아버지 야곱의 총애를 받는 요셉을 이집트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린다. ‘바리새인’들은 한 술 더 떴다.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이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따르는 무리가 크게 늘어나자 로마황제에게 그를 위험인물로 무고해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시켰다.


심리학자들은 시기와 질투가 인간심리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시기는 주로 물질을 대상으로, 질투는 주로 사람을 대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일수록 시기와 질투는 극대화된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남이 해외여행을 가면 나도 가야하고, 남이 벤츠를 타면 나도 벤츠를 타야 한다. 작은 문제에도 양보 없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며 충돌하다 끝내 비극적인 사태를 몰고 오기 일쑤이다. 우리 사회에서 툭하면 일어나는 총격, 칼부림 사건 등이 그런 예이다.
특히 기계문명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선 인간관계가 점점 더 소원해진다. 소외감에 짓눌린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적개심을 품고 엉뚱한 대형사건을 일으킨다.

1999년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의 무차별총격으로 학생 및 교사 15명이 숨진 사건이나,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무차별 총격으로 33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당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조승희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총격범은 작은 증오심을 큰 적개심으로 키워 사회에 앙갚음 했다. 산에 눈이 쌓이면 눈사태가 일어나고 강에 빗물이 모이면 홍수가 일어난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성경의 가르침처럼 작은 미움을 그대로 놔두면 불행의 씨앗이 되기 쉽다. 결국 자신의 불행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혹 누구를 미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말끔히 털어내고 새해를 맞이하자. 2012년의 새 부대에는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술만 담도록 하자.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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