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울까?

2011-12-23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2월17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듣고 시내에 나온 평양주민들, 만수대 언덕과 김일성 광장 곳곳에서 추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초라한 옷차림에 헐벗은 티가 역력한 노인들이 차가운 땅바닥을 구르며 비통해하는 모습을 보니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저렇게까지 하게 하는가’하여 마음이 언짢다.

조선중앙TV는 학교와 직장, 김위원장 사진 앞에서 통곡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평양 외 황해도, 함경남도, 평남, 자강도 주민들도 다들 가슴을 치고 운다고 한다.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일 것이다. 진실일 수도 있는 것은 태어나면서 혹은 어려서부터, 또 수십년 세월동안 위대하고 영명한 최고 지도자 김정일로 세뇌된 그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일 수도 있겠다. 외부 정보와 세계를 보는 눈이 차단되고 통제된 북한이니 김일성 주석의 비호아래 권력을 세습한 김정일 외에 다른 지도자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지난 1974년 8월15일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해 암살되자 시골 장터나 분향소에는 목을 놓고 통곡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는데 국민들 가슴 속에 자애롭고 인자한 국모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어린 초등학생들도 어른이 우니 따라 울었다. 사실 사람들은 군중 심리로 인해 더욱 울었던 것이다.그때 한국민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6년의 교육을 마칠 동안 투표권 한번 못써본 사람들도 많았다. 제5대, 6대, 7대, 8대 대통령을 연이어 하면서 학생은 물론 어른들도 18년 이상 대통령 박정희가 머리에 박혔으니 육영수 여사는 그야말로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였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의 눈물이 가짜일 수 있는 것은 북한은 주민 2,200만명이 제대로 살지 못하고 고통과 배고픔 속에 이어져 온 정부이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자아비판 속에 울고 우는 것도 감시대상이 되었다 할 때 어찌 이 엄청난 일에 데면데면한 얼굴로 있을 수 있겠는가. 주위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비판 받지 않으려면 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울음은 연출된 것이고 가짜 울음인 것이다.

당과 군에서 명령하는 대로, 전달하는 대로 쳐야하는 박수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울고 웃는 감정마저 남들에게 과시해야 하는 그들에게 ‘울지마, 왜 울어?’ 하고 싶다.사실 그들의 위대한 장군님이자 탁월한 영도자 김정일은 한평생 잘 먹고 잘 살았다. 김일성의 아들로 금수저 물고 태어나 20년간 후계자 훈련을 받았고 권력을 세습한 후에도 최고급 코냑에 기름진 음식, 넘치는 여자에 어딜 가나 ‘공산왕조의 최고 권력자’로써 최고 대접을 받으며 살았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급병이 왔다는데 그것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북한은 수백만 명이 굶어죽는 환경에서 ‘왜 우리는 이렇게 못사는가’ 하는 불평불만의 싹이 자라기도 전에 뿌리부터 뽑혔으니 자유의지는 완전 불모의 땅인 것이다. 차라리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북한 군대는 무섭지 않다. 권력을 다투는 암투라도 일어난다면 금방 무너질 것이다. 강한 것은 구부러지지 않고 반으로 딱 부러질 뿐이다. 하지만 작고 나약해 보이나 저렇게 함께 뭉쳐 울어대는 군중의 힘은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다. 당분간 변화는 오지 않겠지만 갑작스런 통일이 온다면 자신의 감정도 필요에 따라 조정하는 북쪽사람들과 자신의 기분과 의지대로 감정표현을 하는 남쪽 사람들이 융화하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고 아픔과 고통을 품은 채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나가 될 까, 몇 세대가 흘러가도 남과 북은 물과 기름처럼 각자 따로 따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