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펭귄에게서 배운다

2011-12-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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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몇 년 전에 인상 깊게 본 영화가 있다. ‘펭귄들의 행진(March of the penguins)’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이다. 요즘 같이 어려운 때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펭귄들의 강인하면서도 성실한 삶의 태도에서 인간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극의 ‘황제 펭귄’은 바다가 삶의 무대지만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조상전래의 산란장인 얼음 밭으로 몰려간다. 그 얼음 밭은 원래 바다에 인접해 있지만 겨울이 되면서 빙하가 확장되기 때문에 산란기가 되면 바다에서 60여마일이나 멀어진다. 수백마리의 펭귄이 마치 군대처럼 열을 지어 뒤뚱거리며 한 달 이상 행진한 끝에 고향 얼음 밭에 도착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이다. 펭귄사회는 암놈이 알을 낳으면 수놈이 인계받아 부화시킨다. 두달 동안 먹지 못해 체중이 3분의 1정도 줄어든 암놈들은 알을 인계한 뒤 먹이를 찾아 다시 바다를 향해 행진한다. 수놈들은 인계받은 알을 자기 발등 위에 올려놓고 아랫배로 감싼다. 영하 40~50도의 강추위 속에 수놈들은 웅크린 채 알이 빙판 위에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부동자세로 하염없이 서 있다.


이윽고 알이 두달 쯤 뒤 부화되면 그동안 바다에서 포식한 어미들이 새끼 몫 먹이를 위 속에 저장한 채 때맞춰 돌아온다. 암컷들은 위 속의 먹이를 토해 새끼 입에 넣어주며 비로소 어미 노릇을 한다. 이 영화를 보면 인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경탄스럽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경기의 고통은 그에 비하면 ‘새(펭귄) 발의 피’라는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세밑이 코앞인데 경기는 도무지 풀릴 기색이 없다. 절망에 빠져 한숨짓는 한인들이 예년보다 더 많아 보인다. 사업체 문을 닫고 낙담해 있거나 일자리를 잃어 당장 생계가 막연한 한인들도 많다. 주류사회에서도 ‘99%’를 자처하는 민중이 1% 재벌들의 탐욕과 금융 부조리를 규탄하며 벌이는 ‘점령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아무리 자본주의 왕국이라 해도 부의 편중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자세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참아야 할 때다.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얼음밭 위의 아비 펭귄처럼 꼼짝 않고 참아야 한다.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 모르지만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의 경제지표들을 근거로 내년엔 조금이나마 경기회복의 조짐이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소위 할러데이 시즌인 11~12월의 연말에 접어들면서 경기회복의 미풍이 불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우선 경기회복의 바로메터인 실업률에서 청신호가 켜졌다. 연방노동부는 지난 달 전국적으로 농업 이외 부문에서만 12만명이 취업해 실업률이 8.6%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9년 이후 32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소비자들도 주머니를 풀기 시작했다. 전국 소매상연맹(NRF)에 따르면 소위 ‘블랙 프라이데이’를 포함한 추수감사절 쇼핑시즌의 매출이 작년보다 16%나 급증한 524억달러에 달했고 ‘사이버 먼데이’의 매출도 12억 50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22%가량 증가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자동차 판매도 부쩍 늘어났단다. 결과적으로 11월 소비자 신뢰지수가 56을 기록, 10월의 40.9보다 대폭 상승해 지난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을 뒷받침했다. 마치 가뭄에 애타게 기다리던 단비 소식을 듣는 느낌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비오는 날이 있으면 개인 날이 있다. 캄캄한 터널에 들어가는 기차는 곧 밝은 햇빛 속으로 나온다. 생지옥인 홀로코스트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끝내 살아나온 유대인들이 있다. 결국 어떻게 참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언제까지 참느냐는 것이다. 허황한 일확천금의 꿈을 버리고 절약하며 참되, 끝까지 참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펭귄들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다.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남극의 동토처럼 황량하지만 끝까지 참자. 그러면 펭귄 부부가 역경 속에서 새끼를 부화시킨 후 느낀 그 희열을 우리도 반드시 맛볼 수 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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