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골수이식 기증 수호천사

2011-12-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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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골수이식 기증자인 수호천사. 2008년도 칸 영화제에 소개되었던 프랑스 영화인 크리스마스 이야기(Christmas tale)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그린 작품이다. 혈액 암을 앓고 있는 어린 아들 조셉의 부모인 주농과 아벨은 아들을 살리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아이를 살리는 유일한 길은 골수이식을 받는 것이지만 아이의 골수와 일치되는 기증자를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조셉의 부모는 마지막 처절한 몸부림으로 아이를 낳기를 결심한다. 그러나 새로 태어난 아이 앙리는 형과 조직 형이 맞지 않아 조셉은 죽고 만다. 조셉을 잃은 슬픔의 무게는 가족들의 삶을 억누른다. 가족들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 미움과 좌절로 분열되면서 가정은 해체된다.이 가족은 다시 운명적으로 크리스마스에 한 자리에 모두 모이게 된다.어머니인 주농이 다시 백혈병에 걸려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는 극한의 상황 때문이었다. 형 조셉을 살리지 못한 앙리는 골수이식의 성공으로 엄마인 주농을 극적으로 살리게 된다. 백혈병을 앓는 환자의 가족들이 어둡고 긴 투병기간을 통과하며 갈등과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해는 우리 가족에게 뜻 깊고 값진 해였다. 우리 집안 식구 중에 의과대학에 다니던 학생시절에 내셔날 메로우 베이스(National Marrow Base)기관에 골수이식 희망자 등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왔다. 골수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어린 소년과 기증자와 골수세포가 일치하니 기증하겠느냐는 의사를 묻는 것이었다. 골식기증자는 잠시 딜레마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녀는 곡예사가 줄을 타듯이 일터와 집 그리고 아이들 사이를 건너뛰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이렇게 기적적으로 서로 일치되는 기증자를 찾았는데 만약 자신이 거절한다면 환자와 가족의 마지막 희망의 줄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그녀는 마침내 어린 소년에게 골수이식(Bone Marrow Transplants) 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일터에서 늦게 돌아와 어두운 밤에 동네 한 바퀴를 숨가쁘게 달리며 체력단련에 돌입했다. 환자가 치유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꺼져가는 어린 생명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다면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기증자인 그녀는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환자 가족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수호천사처럼 아무 조건도 대가도 바라지 않는 소년의 생명을 지켜주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그녀에게 온몸이 떨리는 경종의 메시지를 전했던 한 미국 원주민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 한 구절을 전해주었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자매다. 곰, 사슴,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모두 우리는 한 가족에 속한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우리 몸에 흐르는 핏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인생의 직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가닥의 실일 뿐이다.”기증자와 환자들은 서로 모르기 때문에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면서 서로 만나지 않더라도 그물망 같은 네트워크를 짜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 해의 끝자락, 소년의 온가족이 둘러앉아 투병의 악몽에서 벗어나 지금은 환한 웃음꽃을 피우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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