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길

2011-12-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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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잘 아는 노부부가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금실 좋게 살더니 남편이 먼저 세상을 등지고 저승으로 갔다. 나이 많이 든 미망인은 “인생이 긴 것 같았으나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고, 같은 길을 살아 온 것 같았으나 지금 보니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길 없는 삶에 인생길을 닦으며 따로따로 외길 인생을 살았다.” 인생에 대한 가장 진실한 철학을 말하고 있었다. 그토록 서로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았던 노부부는 결혼하기 전 젊은 시절에 덕수궁 대문 앞에서 사랑과 그리움 하나 때문에 긴 시간을 발에 묶고 기다리던 것처럼 광활한 하늘 어느 한 지점에서 그때의 그 심정으로 또 만나 또 외길을 갈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모습이 우리들이다.

하늘이나 바다에는 길이 없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바다를 헤쳐 가는 배도 지나고 나서야 지나온 곳이 길이 되고 지나고 나서야 그 것이 길인가 한다. 그 길, 외길이다. 복잡하게 산 것 같은 것이 인생길인데 지나고 보면 그 길은 외길이다. 길은 많아도 모두가 외길이다. 시간은 하나인데 사람들이 그 시간을 찢어서 분을 만들고 초를 만든다. 아무리 그러한들 시간은 한 길로 가는 외길이다. 길로 가는 것에 외길 아닌 것이 없다. 삶이다. 순례자처럼 가지 사이를 휘돌아 가는 바람들, 돌고 돌아가는 강물,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고 싶
었는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들,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지 수천 개의 작은 돌을 쌓아 올린 돌담들, 작은 돌을 모아 짠 돌다리들, 나무로 이어 만든 나무다리, 모래밭을 기어오르는 파도의 물줄기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길에서 밤을 새우는 가로등의 여린 불빛들, 삶에서 오는 상처들,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쁨이나 행복보다는 슬픔과 서글픔이 더 많았던 동서남북의 삶의 터, 쓰러지듯 엎디어 합장하는 간절한 염원, 쓸어 없애도 너울너울 춤추는 고뇌, 침묵 속에다 감추고 가능성이란 희망 하나를 잡고 가는 한 가정의 가장들, 모두가 외로운 외길이다.


그러나 철새들이 먼 길을 가는데 그 길이 외길이 아니면 얼마나 힘이 들까? 외길이기 때문에 쉬어 갈 수 있는 여유, 외길은 좁을수록 사는데 여유롭다.
여유로우면 질서를 알고 질서를 지키게 된다. 태어나자마자 이마에 거는 한 살로부터 시작해서 외길로 줄을 세워 보태는 나이의 질서, 선의 철학을 이용해서 낸 통로가 외길인 것이다. 외길에는 직선의 질서가 있다. 발걸음에도 질서가 있고, 줄서기에도 질서가 있고, 생각에도 질서가 있고, 열매가 익는 데에도 질서가 있고, 사랑이 익는 데에도 질서가 있고, 사는 길에도 질서가 있다. 질서가 무너지면 그 길은 이미 길이 아니다. 사랑으로 엮어졌다는 부부가 잦은 다툼으로 불행해 진다면 그 부부는 질서를 외면하거나 질서의 가치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한권의 성경이나 거대한 대장경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질서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질서, 선생과 제자 사이의 질서, 친구 사이의 질서, 부부 사이의 질서, 신과 인간 사이의 질서, 이웃 사이의 질서, 사회생활의 질서...

성공적인 운영의 결과를 위해서 필요한 제일의 조건이 질서고, 이 질서는 직선에서 이루어진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철칙이고, 헤어지고 나면 인생은 외길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긴다. 인생은 외길, 가난한 외길이다. 그러나 꽃밭을 일구는 외삽은 가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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