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나꼼수와 ‘레드스킨스’(Redskins)

2011-12-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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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젊은 층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미국 공연 소식을 인터넷에서 점검하던 중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오마이뉴스’라는 한국의 진보성향 사이트가 ‘나꼼수’ 활동을 소개하며 게재한 것이다.한인으로 추정되는 한 젊은이가 워싱턴 ‘레드스킨스’(Redskins) 미식축구팀 명칭과 로고가 새겨진 붉은색 운동 셔츠를 펼쳐들어 보이며 서있는 모습.그런데 셔츠에는 놀랍게도 영어로 된 팀 명칭과 로고 아래 ‘나는 꼼수다’라는 노란색 글씨가 가슴 한복판에 크게 한글로 새겨져 있다.

사진설명은 “지난 8일 저녁 7시(현지시각) 워싱턴 DC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SAIS)에서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강연회를 연 가운데 정봉주 전 의원의 팬까페인 ‘정봉주와 미래 권력들(미권스)’ 워싱턴 DC 회원들이 유명한 미식축구팀 유니폼에 메시지를 적었다. 미권스 회원인 파티즌은 ‘미식축구의 러닝백처럼 정 전 의원이 열심히 달려서 한미 FTA를 저지해 달라는 염원을 담았다’고 소개했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이번 미국 공연에 동참하지 못한 ‘나꼼수’ 멤버이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주가 조작에 연루됐다는 등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명예훼손 등)로 1·2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사건이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어 여권이 발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에 소개된 셔츠는 워싱턴 DC에 있는 팬까페 회원들이 그를 격려하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지역을 대표하는 ‘레드스킨스’ 팀 명칭과 로고, 그리고 역시 로고 형태의 ‘나는 꼼수다’라는 글을 추가로 새겨 넣어 제작한 미식축구 유니폼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권스’의 미주지역 블로그 사이트를 보면 ‘파티즌’(partizen)이라는 아이디 사용자가 지난 10일자로 올려놓은 글과 사진에도 이 셔츠가 등장한다.블로그의 사진은 셔츠의 앞면과 뒷면을 모두 공개하는데 셔츠 뒷면에는 “FTA 저격수 정봉주”, “달려라”, 그리고 “미권스 DC"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블로그는 이 사진에 대해 “미권스 DC에서 준비한 이곳에 오지 못하신 봉도사님 응원 메시지가 담길 Washingtone Redskins Jersey !!!”라는 설명을 함께했다.(*블로그 글에 Washington이 Washingtone으로 표현돼 있음).

한국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나 미국에서는 저작권을 포함해 도용, 변조, 왜곡 등 행위로 인한 각종 침해를 민·형사법으로 엄격히 다룬다,
바로 문제의 사진이 눈길을 끈 이유다. ‘나꼼수’와 ‘한미 FTA 반대 운동’ 그 자체가 도용, 변조, 왜곡이라는 평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셔츠를 얼핏 보면 마치 ‘레드스킨스’와 ‘나꼼수’, ‘한미 FTA 반대 운동’이 서로 무슨 연관이나 있는 듯하다. ‘레드스킨스’가 ‘나꼼수’와 ‘한미 FTA 반대 운동’을 공식 지지하는 것과 같은. 저작권 보호를 받는 팀 명칭과 로고는 반드시 사전 승인이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하기에.

그런데 ‘레드스킨스’ 유니폼과 팀 명칭, 또는 로고가 사용된 품목의 공식 판매 허가가 주어진 그 어느 매체에서도 ‘나꼼수’, ‘한미 FTA 반대 운동’ 내용이 함께 인쇄 제작된 ‘레드스킨스’ 셔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사진의 셔츠가 워싱턴 ‘레드스킨스’ 팀 명칭과 로고, 유니폼을 목적 편리에 맞춰 멋대로 도용, 변조, 왜곡한 것은 물론 불법 제작된 것을 의미한다.

극히 단편적인 예지만 대중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는 법도 무시하고 얄팍한 ‘꼼수’를 서슴없이 부리는 사고방식이 셔츠 한 장에서 엿보였기에 사진에 눈길이 끌린 것이다.앞서 뉴욕을 방문한 ‘나꼼수’ 멤버들이 피자를 사들고 맨하탄 주코티 공원을 찾아간 것을 놓고 월가 점령 시위대의 ‘공짜 피자’ 환호를 ‘나꼼수’와 ‘한미 FTA 반대’ 지지로 둔갑 왜곡시킨 ‘꼼수’가 눈길을 끌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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