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모르는 빚이 있다구요?-경제적 학대

2011-12-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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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뉴욕가정상담소 소셜워커)

김수진(가명)씨는 미국 시민권자인 남자를 만나 8년전에 결혼하여 미국에 왔다. 남편은 부부의 은행 계좌를 모두 본인이 관리하고 렌트비나 모든 생활비를 본인이 지불하는 등 아내에게 어떤 경제권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진씨는 남편의 수입이 얼마인지, 통장에 잔고는 얼마나 남아 있는지, 렌트비며 전기세는 얼마나 나오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음식 장만을 위한 장을 보는 것도 남편이 알아서 했다.

거기다가 7살, 6살 연년생인 아이들이 뭔가 성에 차지 않는 행동을 하면, 남편은 수진씨를 매섭게 비난하며 몰아세웠고, 집에서 하는 일도 없이 아이들 교육 하나 제대로 못 시키냐며 아이들 앞에서 모욕을 주기 일쑤였다. 남편은 직장에 나가서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일이 체크하였고 수진씨는 남편의 허락 없이는 집밖으로 나가는 일 조차 불가능 하였다. 수진씨는 창살 없는 감옥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영어도 서툰데다 집 근처 외에는 혼자서 나가본 적도 없었던 터라 어디가서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8년간의 결혼생활 후, 수진씨는 마침내 남편의 통제와 모욕만이 가득했던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저기서 알게 된 정보로 수진씨는 비록 신체적 폭력은 없었어도 어렴풋이 자신이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진씨는 남편이 자신의 허락도 없이 사업을 한다며 수진씨 이름으로 진 5만달러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을 떠나 두 아이와 본인이 먹고 살 일도 막막한데 수진씨는 자신이 지지도 않은 빚과
함께 망가진 크레딧을 회복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수진씨의 이야기는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얘기 중 하나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진씨와 같은 사람들을 돕는 기관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수진씨는 그런 기관을 찾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과 아이들이 경제적 독립에 이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물론 어느 부부나 돈과 관련하여 결혼 생활 중 큰 싸움 한 두번은 하게 마련이고 남편이나 부인 모두 똑같이 가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세히 알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통은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주로 경제권을 갖고 소비와 지출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
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부가 경제적으로 건강한 관계에 있다면 남편과 아내 모두 은행 통장이나 그 외의 부부의 공동재산에 대해 동등한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또한 돈의 쓰임새나 지출 규모에 대해 부부간 상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의 경우를 체크하여 보면 우리 부부 사이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건강한 관계인지를 가늠하여 볼 수 있다.1.남편(아내)이 내가 어떻게 돈을 쓰고 있는지를 체크 한다.2.돈을 부부 중 한 쪽이 관리하며 관리를 하지 않는 배우자에게는 용돈을 준다.3.남편(아내)이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 한다. 혹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4.남편(아내)이 나의 돈을 나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 통장에서 빼서 쓴다.5.남편(아내)이 론을 얻거나 집, 차를 사고 파는 등의 일을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여 한다.6.남편(아내)이 내 이름으로 크레딧 카드를 오픈하여 쓰고 갚지 않는 등 내 이름으로 빚을 진다.

위의 문장에 대한 답으로 ‘그렇다’가 하나 이상 있다면, 그 관계는 경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관계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배우자나 파트너로부터 학대를 받고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과 당신 자녀의 신체적 안전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 이외에 ‘경제적 안전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도움이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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