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올바른 성탄축하

2011-12-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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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크리스마스는 12월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는 이제 기독교만의 축제일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온 세계인들이 축하하는 날로서 지금까지의 축제의 잘못된 부분들을 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성탄의 본래의 뜻도 모르고 역행하는 축하는 차라리 그날에 대한 모독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탄절에 부르는 대표적인 캐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인데 실제에 있어서는 시끄러운 밤이요 난잡한 밤이 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진정한 성탄축하이겠는가? 올바른 성탄축하는 성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앞서야 하는 것이다.

성탄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죽을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몸소 죄인의 모습을 입고 죄악 세상에 태어나신 날이다. 그렇다면 성탄은 십자가를 전제로 한 고난의 시작인 것으로서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가슴 아픈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끼리 떠들썩하게 캐롤을 불러대고 선물을 교환하며 소란을 떠는 일은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겠는가? 교회에서도 이날 ‘할렐루야’ 합창을 부르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의미상으로 본다면 할렐루야 합창은 부활절
에 불러야 합당한 곡이라 하겠다.


가장 좋은 성탄축하는 성탄의 정신을 올바로 알아 실천하는 일이다. 성탄의 정신 그 첫 번째는 ‘봉사정신’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 세상에 하강하셨다는 것은 엄청난 봉사정신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럼에도 부구하고 인간들은 그를 영접은 커녕 오히려 푸대접하고 냉대하고 처형했던 것이다. 애당초 그렇게 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33년의 그리스도의 생애는 봉사정신으로 시종일관했던 것이다.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함”이 그리고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함”이 성탄의 정신인 것이다.

두 번째 성탄의 정신은 희생정신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代贖)의 제물로서 인간계에 오신 것이다. 남의 죽음을 대신해 죽는 일 이상의 희생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거룩한 희생이라 할 것이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롬5:7)고 했으니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거룩한 희생인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성탄축하를 하려면 그의 탄생에서 그의 죽음까지를 투시하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만일 예수의 봉사가 대속으로까지 연결되지 못하였다면 그는 하나의 인도주의자일 뿐 구세주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심 없는 봉사정신을 가지고 이웃을 섬기는 비범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더러 있거니와 그 봉사가 남 대신 죽기까지 대속물이 되는 경우는 드문 일인 것이다. 남 대신 죽지는 못할지언정 남의 죄를 함께 부끄러워하고 함께 아파하기라도 한다면 이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속의 정신이라 하겠다.

말로도 돈으로도 할 수 없고 반드시 생명을 바쳐야만 되는 일이 있다. 그것이 곧 대속이요 희생인 것이다.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비강(卑降)이며, 격하(格下)이며, 희생 (犧牲)이며, 죽음인 것이다. 이러한 성탄절을 맞이하여 가난을 핑계로 구제만을 바라거나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선물만을 기대하거나 대목이라는 구실로 매상고만을 올리려는 일체의 행위는 성탄의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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