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먼지 하나에, 꽃 한 송이에~

2011-12-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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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선인장과의 한 화초에서 꽃이 핀다. 색깔이 연분홍색으로 아주 아름답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피는 이 꽃은 한 번 피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피고 진다. 약 한 달여 피고 지는 꽃송이는 아마도 수 백 송이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꽃의 존재와 우주, 그 꽃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인간 존재와 그 가치, 우주,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20세기 수학, 과학, 철학자인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영국)에 근거해 풀어보고자 한다. 그는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는 생명이고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려는 인간은 이 현실적 존재가 고도로 결합된 고양된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현실적 존재엔 우리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먼지도 포함된다. 흩날리는 먼지도 현실적 존재니 널려 있는 바위나 돌들, 그것들도 모두 현실적 존재가 된다. 또한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를 하나의 사건으로 본다. 그러며 그는 그 사건을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유형은 신체와 정신을 갖는 인간의 존재다.


둘째 유형은 곤충이나 척추동물 같은 온갖 종류의 동물생명체이다. 셋째 유형은 모든 식물생명체이며 넷째 유형은 생명을 지닌 아메바 같은 단세포들이다. 다섯째 유형은 무기접 집합체인 바위와 돌 같은 광물들이며 여섯째 유형이 현대물리학의 미세한 분석에서 드러나는 미소한 규모의 사건으로 분자와 전자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현실적 존재의 유기적 구조는 생성(becoming), 존재(being), 관계(relatedness)에 근거한다”며 “현실적 존재 자체가 우주의 모든 항목의 응결체이기 때문에 우주 전체의 연대성과 불가분의 관계, 즉 먼지 하나의 출현에 우주 전체가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한 송이 꽃의 출현은 우주 전체와 얽혀서 풀 수 없는 사건”이라 본다.

이렇듯, 화이트헤드는 생명에 대한 정의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면서 “생명이라는 사건은 우주의 연대성을 통해 고유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생명, 하나하나는 상호의존성과 연대성이 결여되어선 절대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주의 연대성은 생명의 바탕이고 살아있는 생명은 우주 전체의 연대성을 예증하는 분명한 사건”이라 덧붙인다. 또 그는 “모든 사물은 흐른다(all things flow). 우주(reality)는 정태적 구조가 아니라 그것은 그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 끊임없는 과정(process)이다. 흐르는 우주의 강물을 인간이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 사유의 아주 결정적인 취약점”이라 한다. 그러면서 “생명은 결코 소멸하지 않고 세계 안에서 불멸하는 존재”로 본다.

그렇다. ‘나’란 생명의 주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객체적 연대에서 생성됐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는 또 그 위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렇게 흐름을 올라가다 보면 친가와 외가 쪽으로 수천, 수만의 혈맥과 연결된다. 이렇듯 자신의 혈통의 시작은 자신의 뿌리뿐만 아니라 조상의 역사와 함께 흐르는 연대적 과정임을 본다. 화이트헤드는 “인간은 변화 안에서 통일을 구현해 나아가는 존재다. 인간의 전제는 절대적 동일성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흐르는 강물을 세차게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변화무쌍한 세계 안에서 그의 고유한 주체적 지향(subjective aim)을 구현하고 실현해 나가는 모험의 존재”라며 “생명은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이라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양한 가치의 궁극적인 조화는 아름다움이며 이러한 아름다움은 평화를 목표로 한다. 평화는 모든 생명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충만하게 구현하면서 조화를 잃지 않는 불멸하는 생명의 궁극적인 왕관”이라 지적한다. 집 한 쪽에서 피고 지는 아름다운 꽃을 본다. 또한 그 속에 들어있는 우주의 조화와 생명의 평화를 엿본다.

얼마 안 있으면 크리스마스가 온다.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기독교에선 예수를 평화의 왕이라 말한다. 이 땅에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육신이 되어 내려온 예수.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진정한 인간은 평화의 왕, 예수 같은 사람이 아닐까. 먼지 하나에, 꽃 한 송이에 들어있는 우주의 생명과 마음. 그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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