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돈이 전부는 아니다

2011-12-07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돈을 잃어버리면 작은 것을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어버리면 큰 것을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엔 돈을 잃어버리면 명예도, 건강도 팽개치는 것은 물론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잃어버리고 벼랑 끝에 섰던 사람이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동방의 의인’ 욥이다. 그는 사랑하는 10명의 자녀와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한 순간에 모두 잃고 온몸에 심한 악창(피부병)까지 생겼다. 아내마저 그를 저주하고 떠나버렸다. 그러나 욥은 결코 좌절하
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전보다 두 배나 많은 자녀와 재산을 소유하는 축복을 누렸다. 영국 시인 퍼시 셸리가 “겨울이 오면 봄도 또한 멀지 않다”고 노래한 것도 인생은 고난만이 전부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로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파탄을 일으키는 한인가정이 많다. 곤경을 참고 극복하기보다 자살하거나 남을 살해하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가정이다.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해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지면 부부간에 불화가 생기기 십상이다. 가장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음주, 마약, 도박 등에 쉽게 손을 대게 된다. 그럴수록 살림은 피폐해지고 아내와 자녀들의 불만은 더욱 팽배해진다. 어떻게든 힘을 모아 고난을 이겨내고 가정의 행복을 되찾겠다는 애틋한 부부애나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가족들 사이에 사랑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6·25동란으로 삶의 터전이 잿더미가 됐을 때도, 그리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미국 땅에 삶의 뿌리를 옮겼을 때도 온 가족이 똘똘 뭉쳐 어려움을 이겨낸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뒷문으로 달아난다는 영국 속담이 있긴 하지만, 돈이 궁해지면 가족들이 뭉치지 않고 흩어진다. 마음이 강팍해지면서 결국 가정이 무너진다. 돈이 가정의 버팀목인 사랑까지 뽑아버린다.


미국인 실업자들은 우리와는 좀 다르다. 당장 먹고 살 돈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대부분은 조만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뉴욕타임즈와 CBS방송이 최근 전국의 성인 실업자 4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내년에는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길 것으로 확실히 믿고 있다고 답했다. 또 실업자의 3분의 2는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빈곤에서 탈출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답하였다. 그래서인지 미국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요즘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다. 간소한 생활이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려는 태도이다.
미국의 대표적 단편소설작가인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가난한 두 젊은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생각난다. 아내 델라는 아름다운 긴 머리카락을 감아올릴 머리핀이 소원이었지만 돈이 없어 사지 못했고, 남편 짐은 손목시계가 있지만 낡은 가죽 줄이어서 제대로 차고 다닐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델라는 자기가 그처럼 아끼던 머리를 잘라 팔아서 짐의 시곗줄을 샀고, 짐은 시계를 팔아서 델라가 갖고 싶어했던 머리핀을 샀다.

집에 돌아온 짐은 델라의 짧아진 머리를 보고 아내를 넋 빠진 듯 바라본다. 그런 남편에게 델라는 “내 머리카락이 짧아졌어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시겠죠? 내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예쁜 선물을 샀는지…” 그제서야 짐은 자기가 사온 선물을 내놓으며 말한다. “당신의 머리카락이 길든, 짧든 나의 사랑은 추호도 변함이 없소. 하지만 이 포장을 풀어보면 왜 내가 잠시 동안 멍하게 됐는지 알게 될거요.” 감동어린 이 단편소설의 주인공 부부가 나누는 진하고 애틋한 사랑을 보면 아무리 세상이 혼돈되고 삶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들과 같은 사랑만 있다면 죽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아무리 험난하고 높은 산이라 할지라도 못 넘을 산이 없을 것 같다.
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