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보 이반의 이야기

2011-12-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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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은 내가 다시 읽고 싶은 책 중에서 가장 손꼽히는 책이다. 간신히 손에 넣은 동화선집 ‘바보 이반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는데, 옛날에 읽었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그의 철두철미한 바보스러움에 새삼 경악을 금치 못한다. 톨스토이는 당시 19세기 러시아 사회와 유럽 사회를 풍자하면서 세묜과 타라스를 통해 특정 계급의 사람들을 조롱하고 주인공 바보 이반을 통해 농민에게 빌붙어 사는 귀족들을 멸시했다고 한다. 19세기 상황 그대로는 아니지만 요즈음 우리 현실도 권력을 얻기 위해 힘을 가진 관직자에게 뇌물을 주거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재물을 모으다 결국에는 덜미를 잡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몇 사람의 대표적인 ‘바보’가 있었다. 바보의 원조는 아무래도 고구려의 온달이고, 현대사의 바보는 함석헌, 그리고 바보 김수환과 바보 노무현이 그들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온달은 가난했고 눈먼 어머니를 공양했다. 너무 용모가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워서 사람들이 ‘바보 온달’이라 불렀는데 울보 평강 공주가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내겠다는 말을 정말로 믿고 온달의 집에 찾아간 것이 발단이 되었다. 사냥 대회에서 온달은 뛰어난 솜씨로 왕의 눈에 들게 되었고 북주(北周)의 요동 침입 때 고구려군의 선봉으로 나가 큰 공을 세워서 임금의 사위로 인정받고 관직을 받았다.

인권 운동가이고 종교인, 사학자, 언론인으로서 평생 동안 함일 반 독재 투쟁을 전개 해 온 함석헌은, 땅 위에서는 바보처럼 잘 걷지 못하고 뒤뚱거리지만, 날개는 길어서 가장 높이 나는 새(albatross)인 바보새(신천옹)를 자기 호로 삼고, 바보를 자처했다. 근년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 자화상 ‘바보 김수환’을 그렸고 그의 저서 ‘바보가 바보들에게에서 “안다고 나대고…, 대접받길 바라고…, 내가 제일 바보 같이 산 것 같아요”라고 말했으며, 가까운 신도들과 천주교나 언론에서도 이 애칭을 즐겨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 고 노무현 대통령도 ‘바보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유리한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국회의원에 떨어진 미련한 사람, ‘바보 노무현’을 청문회 스타이래 사람들이 붙여 주었던 여러 별명 중에 제일 마음에 들어 했다. 세상에는 이 모양 저 모양의 많은 바보가 있지만 참으로 바보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까 한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의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았다. 그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 했지만 그 자리를 피했고, 호산나 호산나를 부르는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온 인류을 구원하기 위해 고통과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에 달려 세상을 떠났다.

정말 바보들이 많은 나라와 사회, 교회, 가정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감히 바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서는 ‘바보 교사’, 교회에서는 ‘바보 권사’, 가정에서는 ‘바보 엄마’, ‘바보 할머니’를 언감생심 꿈꾸어 본다. 그리하여 바보들의 행진은 오늘도 계속되는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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