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0년전 여배우 익사사건 진상 밝혀질까

2011-12-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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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탈리 우드 ‘비운의 죽음’ LA 셰리프 재조사에 관심

▶ “중요한 새 증언” 타살 정황 언론 “속셈있는 수사” 비난

30년전 여배우 익사사건 진상 밝혀질까

로버트 왜그너 / 크리스토퍼 월큰 / 나탈리 우드

나탈리 우드는 과연 누군가에 의해 살해됐는가. 우드가 지난 1981년 11월28일 LA 인근의 카탈리나 섬 해역에서 익사한지(당시 43세) 30년 만에 최근 LA카운티 셰리프가 그의 익사에 관해 재조사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 같은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범죄사건 전문가들은 이미 익사로 확인된 죽음을 재조사 한다는 것은 그 죽음이 익사가 아닌 제3자에 의해 초래됐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연예 주간지 할리웃 리포터가 보도했다.


수사당국이 우드의 익사를 재조사 하겠다고 발표하게 된 것은 우드가 익사한 날 당시 남편인 배우 로버트 왜그너와 그 때 우드가 출연 중이던 영화 ‘브레인스톰’의 공연배우인 크리스토퍼 월큰과 함께 타고 있던 요트 ‘스플렌더’호의 선장 데니스 대번으로부터 ‘중요한’ 새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왜그너와 월큰을 인터뷰는 하겠지만 이들이 혐의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번은 과거 자기는 왜그너를 위해 위증했다면서 “왜그너가 당시 요트에서 실종된 우드를 찾는 일을 일찍 중단하지 않았더라면 우드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우드의 죽음의 책임이 왜그너에게 있다고 말했다.


우드와 왜그너 및 월큰은 당시 추수감사절 연휴를 ‘스플렌더’호에서 보냈는데 수사당국에 따르면 요트에서 술을 마신 왜그너가 월큰이 우드와 너무 가깝게 지낸다고 시비를 걸면서 둘 간에 싸움이 벌어졌었다. 이로 인해 왜그너와 우드 간에도 싸움이 있었고 그로부터 얼마 후 우드가 실종됐던 것.

결국 우드는 익사체로 발견됐고 수사 당국은 수영을 못하는 우드가 배에 매어 달린 소형 구조정의 느슨해진 줄을 단단히 매려다가 바다에 떨어져 익사한 것으로 일단락 지었었다. 그러나 수사 당국의 익사 확인에도 불구하고 우드의 죽음에 대해선 그 후로도 여러 가지로 의문이 있다는 설이 나돌았었다.

가장 큰 의문은 왜 왜그너가 우드가 실종된 지 4시간이 지난 새벽 5시11분이 돼서야 구조당국에 신고를 했느냐 하는 점이다. 당시 우드의 익사체를 건져 올린 구조대 반장 로저 스미스는 “왜그너가 우드의 실종을 좀 더 일찍 신고했더라면 우드는 충분히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당국은 우드의 익사 재조사를 위해 수사관들을 ‘스플렌더’호가 있는 하와이로 파견, 과거보다 발달된 과학적 수사방법을 통해 요트를 샅샅이 재검사할 예정이다. 그러나 수사를 위해 LA의 웨스트우드 메모리얼 빌리지 팍에 묻힌 우드의 사체를 다시 파낼지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했다.

한편 사건 재수사 발표가 나온 뒤 월큰(68)은 변호사를 고용했고 왜그너(81)는 “재조사를 환영한다”고 말했지만 변호사를 고용할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그러나 당국의 재수사 발표에 대해 LA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이는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셰리프 당국이 무슨 명목으로 30년이 지난 이제 와서 우드의 익사를 재수사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재수사는 카운티 교도소 내 간수들의 잔혹행위와 자체 기관 내 인종차별 문제로 연방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는 리 바카 셰리프가 자기에게 쏠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할리웃 리포터도 대번의 ‘중요한’ 정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면서 대번이 지난 2009년에 쓴 자신의 책을 팔아먹기 위해 별 신빙성도 없는 정보를 제공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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