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샤핑 시즌에 우리는 덕 보는 셈이다

2011-12-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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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경제팀 차장)

휴가를 이용해 2년만에 한국을 다녀왔다. 잘 먹고 잘 놀다 온 것은 좋았지만 돌아올 때마다 후유증이 있다. 한동안 무의식적으로 돈을 쓸 때마다 “이게 한국에서라면 얼마지?”라고 따져보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한국에 도착하면 “이게 달러로 하면 얼마지?”가 버릇이다.

대부분 한국에서는 방긋, 뉴욕에서는 한숨이다. 2,500원을 주고 담배를 살 때마다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 같았다. 맨하탄에서 담배 한 갑이 1만5천원이니까 정확히 6분의 1이다. 식당에서 소주 한 병은 반의 반값. 택시도 부담 없이 타고 안경도 꼭 구입하게 된다. 휘발유 가격은 한국이 두 배 이상 비싸지만 운전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뉴욕에 돌아와 한달 정액권 지하철 패스를 사면서 한숨이 절로 났다. 104달러. 요즘 환율로 12만원이다. 한국에서는 교통카드 2만원 충전해서 2주간 맘껏 다녔다. 좁고 덜컹거리고 지저분한 지하철안에서 널찍하고 깨끗하고 조용한 서울의 지하철이 떠올랐다. 3배 이상 비싼 요금으로 훨씬 열악한 서비스를 받고 있으니 이건 뭐 비즈니스 좌석 요금으로 이코노미를 탄 격이다. 다만 100달러가 넘는 옷을 구입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기자는 한국 백화점에서 옷 가격을 볼 때마다 기겁을 했다. 여기서 수십 달러면 살 옷이 수백 달러 가격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블랙프라이데이와 사이버 먼데이에 온라인으로 미국 제품을 대량 주문하는 한국내 소비자, 소위 직구족(직접구매족)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한국 관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3년전 1억5,000만달러 수준이던 한국 소비자들의 미국 상품 인터넷 샤핑액이 올해 3억2,000만달러로 늘었다. 특히 추수감사절 시즌을 맞아 평소보다 3배 이상 주문량이 급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추세라면 올 연말에는 사상 처음 4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같은 현상은 동일한 제품의 가격이 미국에서는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특히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배송료를 감안하더라도 인기 브랜드 품목을 절반 이하로 싸게 살 수 있어 큰 인기를 모았다. 레고 세트는 한국내 가격의 30%, 갭 후드점퍼는 40%, 폴로 패딩 점퍼는 30%, 유아동 카시트도 50% 가격에 불과하다. 배송료도 안내고 2주씩이나 기다리지도 않고, 한국에서는 부러워할 가격에 좋은 상품들을 구입할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우리는 여기서 덕을 보는 셈이다. 얇아진 주머니 사정 걱정만 하지 말고 꼭 필요한 물건이라면 그리고 아주 싼 가격으로 얻을 기회가 있다면 침체된 미국 경기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기쁘게 소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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