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아스와 나눔의 계절

2011-11-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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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주 영(주필)

이민자인 청상과부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남의 밀밭에서 이삭을 줍는 이야기가 성경에 나온다. ‘룻기’이다. 대지주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을 보고 추수하는 일꾼들에게 그녀를 위해 일부러 이삭을 땅에 버리도록 지시한다. 룻의 이삭줍기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있다. 프랑스 화가 장 밀레가 그린 불후의 명화 ‘만종’이다. 들에서 감자를 캐다가 교회의 저녁 종소리에 일손을 멈추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은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워서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면 밀레의 성품도 보아스처럼 매우 아름답고 겸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룻이 감사한 마음으로 이삭을 주웠듯이 이들 부부는 온종일 수확한 몇 개 되지 않는 감자를 바구니에 담아놓고 감사기도를 올린다. 어떤 사람들은 만종이 원래는 끔찍한 내용을 묘사했다고 말한다. 바구니에 굶어죽은 아기의 시체가 뉘어 있었고, 부부는 아기를 묻기 위해 들에 서 있는 것이며 교회 종소리는 장례식 만종(晩鐘)이라고 주장한다. 19세기 당시 프랑스 농촌이 그처럼 비참했다는 것이다. 밀레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아기 시체를 감자로 바꿨다는 것인데,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밀레의 그림이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스럽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연민과 사랑이 강하게 배어 있다.


우리의 현실 사회에서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보아스와 같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 덕분에 척박한 사회에서나마 한 줄기 훈풍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엔 자고로 보아스와는 정반대 타입의 사람들이 더 많다.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나만 잘 살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당연히 추하게 느껴진다. 이제 곧 한겨울 혹한이 우리 앞에 닥친다. 올 겨울은 신체적 추위뿐만 아니라 극심한 경기침체에서 오는 정신적 추위도 더 혹심하게 느껴질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고 배려하는 분위기마저 없다면 이 세상은 견디기가 몹시 힘들 것이다. 우리가 혹한 추위를 보다 쉽게 견뎌내려면 내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우리사회에 넓고 크게 번져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연말은 어느 때보다도 나눔의 행사가 많은 계절로 인식돼 있다. 가진 자들이 곡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수확해버리면 못 가진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진다. 요즘처럼 고달픈 시기에 우리 사회에 탐욕스런 ‘1%’ 부자가 아닌, 보아스처럼 관대한 부자가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나만 잘 먹고 잘살려는 1%의 사람들과는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표방하는 나머지 99%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조시대 때 한국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있었다. 그는 봇짐 하나만 달랑 메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누볐다. 빈 털털이 김삿갓이 평생 무전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인심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면 동네 부잣집에 찾아가 밥을 얻어먹고 문간방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 특유의 훈훈한 인심과 배려정신 덕분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심지어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감들을 따지 않고 일부러 남겨 놓았다. 먹이가 귀한 겨울철에 까치들이 먹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람간의 인심은 물론 야생동물까지 배려했던 아름다운 민족성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한민족 특유의 배려문화를 계속 전승해 간다면 우리 후세들의 사회는 얼마나 밝고 희망차겠는가!

극심한 불황 가운데 한인사회에도 노숙자 100명을 포함, 한인홈레스들이 올해 400여명이나 생겨났다. 룻과 같이 암담한 상황의 가정은 부지기수다. 이들을 비롯해 어려운 처지의 한인을 도와야할 사람은 바로 우리다. 보아스 같은 관대한 독지가도 많아져야 겠지만 한인을 주 고객으로 성장한 한국식품점과 식당,
특히 대형교회 등이 적극 앞장서서 어려운 이웃돕기에 솔선수범해야 할 때다. 이들의 사회환원, 이웃사랑 정신이 세차게 파고드는 겨울의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는 불우이웃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낼 수 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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