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2011-11-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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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오는 11월 26일(토)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이 주목을 받고 있다.반(反)월가 시위의 배후격인 온라인 잡지 ‘애드버스터스’(Adbusters)의 공동설립자인 캘리라슨 편집장은 사람들에게 하루동안 소비 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나자고 한다. 라슨은 20일자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이 날을 ‘아무 것도 사지 않는 크리스마스’로 확대변경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26일 전날인 25일은 추수감사절 다음날로 모든 상점마다 대대적인 세일을 하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이다. ‘1년 중 가장 물건값이 싼 날’이라고 단단히 벼른 샤핑객들이 새벽부터 백화점과 각 매장에 몰려드는 연중 최고 샤핑의 날이다. 미국의 온라인 업체들도 모바일 서비스를 앞세워 고객을 끌어당기고 있다. 고객들의 샤핑 형태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스마트폰 검색을 통하면 싸고 좋은 물건을 사려고 매장 앞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매장 안에서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 빠른 샤핑을 할 수도 있다.


추수감사절부터 시작되어 크리스마스 다음날까지 연말 샤핑시즌 동안 다들 가족이나 친지, 이웃의 선물을 사느라 분주하다.“그러면, 25일날 원없이 샤핑하고 다음날인 26일은 피곤하니 아무 것도 사지 말고 집에서 푹 쉬라는 말인가? 캠페인을 하려면 25일부터 시작 해야지, 아니지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 싶
어 이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의 어원을 추적해 보았다.이 캠페인은 1992년 캐나다 광고업자인 테드 데이브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자
신이 만든 광고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소비하게 만든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이 캠페인을 시작, 과소비의 유혹에 맞서는 행동의 장을 마련했다. 당시 많은 나라로 빠르게 확대되었고 매년 11월 26일이 되면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대중들이 소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여러가지 이벤트 등이 열리기도 했다.

캠페인은 건전한 소비를 위해 ▲사기 전-진정 그것을 원하는 가, 당신이 직접 만들 수 있는가, 그것 없이 무언가를 할 수는 없는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재사용, 수선 또는 재활용할 수 있는가 ▲구입이 절실하다면-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된 제품을 살 수 있는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가, 더 나은 도덕성의 대안은 없는가 하는 지침을 내린다.그러니까 생산에서 소비까지 상품의 전 과정에서 환경오염, 자원고갈, 노동착취, 불공정한 거래는 물론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상품도 새로운 신상품에 밀려 얼마 후 쓰레기로 버려지고 마는, 즉 오늘날의 대량생산, 대량 소비의 문제점을 짚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끊임없이 소비하는 일을 하루 24시간동안 중단하자는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캠페인에는 오늘날의 과소비 습관을 반성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20여년 전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고 아는 사람들에게도 별 반응이 없다. 한두달 전부터 이미 연말시즌 샤핑은 시작되었다. 25일인 오늘 자정이나 새벽부터 거리로 나온 사람들로 백화점이나 각 매장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그동안 적자 매상 중이던 가게들은 지금부터 연말까지 흑자 매상으로 바꾸고자 대대적인 세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11월 26일, 하루동안 아무 것도 사지 않는다 하여 자연소비와 환경오염이 얼마나 방지될 것이냐마는 누구나 상가나 집 앞을 청소하는 날 도로를 점령한 검정 쓰레기봉지에 압도당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어떻게 인간의 집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나와’ 하는 그 충격을 되새기면 하루쯤은 아무 것도 사고 싶지 않을 것같다. 또 개인집 구석구석마다 무심코 사들인 물건이 잡동사
니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덜 사지 않을까. 이번 연말시즌 샤핑 전에는 필히 집안 점검부터 해야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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