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9마리의 길 잃은 양

2011-11-23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월가에서 시작돼 전 세계적으로 불이 붙은 ‘99% 시위’가 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미국에서 다시 점화될 조짐을 보여 걱정된다. 지난주 ‘월가 점령’ 시위 발발 2개월을 맞아 월가에 몰려나온 200여명의 시위자를 경찰이 우악스럽게 체포하는 장면이 TV 뉴스에 방영되면서 이를 목격한 힘없는 서민들이 공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서민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거나 자영업소의 문을 닫고 집을 차압당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은커녕,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비상이 걸릴 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들에겐 경찰에 끌려가는 시위대가 마치 자신들의 암울한 처지를 투영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경찰의 마구잡이 시위대 체포는 결과적으로 이들 서민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고전 춘향전에도 비슷한 공분이 깔려있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고향에 내려와 그에게 수청들 것을 강요해온 변 사또를 징계하고 연인 춘향을 구해내는 장면이다. 탐관오리 변 사또에게 벌을 내려 당시 남자들에게 억눌려 있던 여성들로 하여금 대리만족감을 느끼게 해 크게 히트한 소설이다.


얼마 전 한나라당 강용석의원이 여대생들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주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돼 전국의 여성이 벌떼같이 일어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청각장애자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은 사실이 폭로돼 온 국민은 물론 해외한인들 사이에도 공분을 일으킨 광주 인화학교의 ‘도가니’ 사건도 힘없는 사람들이 보여준 동류의식의 발로다.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의 시위자들을 경찰이 마구 잡아가는 광경을 목격한 서민들이 동변상련의 심정으로 안타까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항간에는 가지지 못한 99%의 군중이 월가 시위에
가세해 더 큰 시위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바야흐로 자본주의 말기현상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이론임은 구소련의 붕괴와 북한의 몰락으로 여실히 증명됐다. 모두 함께 일해서 동등하게 분배받는다는 공산주의의 결정적 맹점은 열심히 일해야 할 동기부여의 부재이다. 열심을 내봤자 자기향상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선 누구나 자유롭게 경쟁하며 자신과 가족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고질적 병폐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 본가인 미국에서조차 상위 1%가 국가의 부를 독식하고 나머지 99%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주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 200여명은 99% 서민의 성원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견디다 못해 거리로 뛰쳐나온 이들은 99%를 대신해 평온하고 안락한 삶의 기반을 빼앗은 탐욕스런 1% 부자들에게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피켓에는 “너희들 배부른 소수 때문에 서민들 모두가 힘들다” “너희들 주머니에 있는 돈은 서민들의 것이다”는 등의 글이 절절하게 쓰여 있다. 이들의 외침에 과연 1%의 부자들이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득권자들의 양심, 도덕적 책임의식이 없다면 이들을 체포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런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더욱 크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요즘 일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사회환원이라는 책임 문화,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부자들이 스스로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며 정부에 청원을 하고 있다.

성경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지만 이것도 지금은 아니다. 인간의 기본욕구가 걸려 있는 이유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빵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예수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설 것이 아닌 것 같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방황하고 있는 99마리의 남은 양들을 보듬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만큼 서민들의 생계가 절박하다. 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