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치 있는 길

2011-11-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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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태(시인)

인생은 평온한 평지에 자리를 잡고 진행하는 순탄한 행로가 아니라 한치 앞을 모르는 안개속의 심산유곡을 더듬어가는 아슬아슬한 곡예다. 그런 미로를 나침반도 없고 지팡이도 없이 더듬어 가는 행자(行者)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가기에 아는 척을 많이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세상에는 보이는 것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고 들리는 소리보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무궁무진하게 더 많다.수정같이 맑은 꿈을 뿌려놓은 듯한 밤하늘의 별들도 실상은 보이는 별보다는 보이지 않는 별들이 무수히 더 많고 들리는 바람소리보다는 들리지 않는 바람소리가 더 많다.

종교라던가, 예술이라던가, 문학이 우리 곁을 지나갈 때 우리들의 인생은 썩은 물에서 자라는 연꽃이 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과 곧은 사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종교나 예술, 또는 문학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나 보이지 않는 영원함을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한다.음악은 잡다한 인생의 잡소리들 가운데에서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소리를 선택해서 들리게 한다. 그 소리를 우리는 아름다운 선율이라고 말하면서 그 선율 앞에서 인생을 정화시킨다. 미술
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한쪽을 보이도록 화폭에 그려 넣어 인생에 대한 연민을 가슴속에 담아준다.


삶의 희로애락 가운데에서 보이지 않는 인생 자체의 슬픔과 애환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는 글, 문학이다. 슬픔도 문학에서는 찬란한 아름다움이 되고, 고통도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문학은 본향을 찾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질이 재산이기 때문이다.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의 평화를 불협화음과 투쟁과 살인과 파괴를 일삼는 인류에게 옮겨다 주려는 유일한 소리, 종교다. 인간의 평화는 진정한 평화이기 이전에 위선이거나 타협에 의해서 잠시 유지시키는 계약적인 것이다. 사랑 하나로 맺어진 부부가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 부부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부부 싸움 하지 않는 부부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부부 싸움이란 삶속에서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하면서 부부싸움을 정당화하는 기가 센 여자들.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부여해서 보이는 것을 이용하거나 보이는 것에 기대어 돈을 벌면서 삶을 이어가지만 진정한 가치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리게 하는 창조적인 행위와 그 결과에 있다. 사람 사는데 수 없이 움직이는 동작 가운데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동작을 정리한 발레의 움직임.

시를 쓴답시고 형용사에 기대어 아름다움을 기대하거나, 푸념이나 말장난이나 하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주제를 정했다면 보이지 않는 주제의 본질에 가까이 가면서 본질의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찾아 인성의 눈에 보이도록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수필은 흐르는 물가를 살짝 비켜 앉은 촉촉한 바위에 붙어 초록의 색을 내뿜는 이끼와 같은 이야기라야 한다. 흐르는 삶의 손이 가장 가까이 닿아 삶의 절실함과 삶의 진정성으로 살아나는 글이 되어야 한다. 남루하고 흐트러진 일상이 수필이란 글안에서 자태가 단아하게 되고, 화장이 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같은 그림의 소품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힘없이 초라한 실향의 목숨이 문학의 글에서 인생이 정리되어 힘을 얻고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은 삶의 결과가 규정을 짓지만 하늘의 동의가 없으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으로 무의미 할 뿐이다. 하늘의 동의란 보이지 않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곳을 보이게 하는 데에 있다. 삶은 그것을 위한 노동이고 인생은 그것을 위한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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