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 역사에서 ‘FTA’

2011-11-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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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

중국의 등소평은 1904년에 태어나서 92년을 살았다. 그는 농민 출신의 공산혁명가다. 20대때에 프랑스 유학중에 르노 자동차공장에서 트랙터를 만드는 금속노동자 생활을 했다. 자본주의 나라에서의 금속노동자 경험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관해서 그를 깨우치게 했다. 격동의 20세기(중국혁명)를 온몸으로 부딪혀 온 등소평은 [공산주의 시장경제]라는 중국식 자본주의를 펼침으로써 정치적 실패로 나락에 떨어졌던 중공(중화인민공화국)을 일으켜 세우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의 거대한 인물이 되었다.

1994년 8월, 자신의 자연적인 수명이 다해가는 것을 감지한 등소평은 중국의 현대화를 책임진 국가의 핵심적인 지도자들을 자신의 거처에 불러 모았다. 150년 전 쇠퇴하기 이전의 중국을 회복하기위한 지침을 당 지도자들에게 내렸다. 그의 지침엔 간단명료하게 중국의 정책목표가 담겨있다. 첫째는 패권주의와 세력 정치에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옹위할 것. 둘째는 신국제 정치.경제 질서를 건설할 것이다. 첫째의 내용은 경제력 향상을 위한 중국의 노력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를 미국과의 군사충돌을 신중하게 회피하면서 미국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둘째의 목표는 유라시아 서 극단에 위치한 유럽과 동 극단에 위치한 일본을 양손에 움켜쥐고 있는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바꾸는 것이 목표다. 등소평의 지침은 그의 후계자들을 통해서 차곡차곡 실현되어 왔다. 지금 G2(미국과 중국)란 국제관계 용어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 하는 것은 중국의 지정학적 미래에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다. 1949년 중국 내전 이래로 미국의 극동정책은 일본에 기초를 두어왔다. 일본은 처음에는 단지 미국의 군사 기지에 불과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정치. 군사적 존립 기반이 되었다. 국제사회에선 여전히 미국의 안보적 보호국으로 머물러 있지만 실제적으론 그 역할에 있어서 일등적 지위를 행세한다. 19세기에 유럽을 모방하여 아시아에 제국을 창조한 일본은 스스로 아시아에 속했으면서도 서구권국가임을 지향한다.

여전히 일본은 역동적이고 경제적으로 강력하다. 그러나 지역적으론 고립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상흔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일본의 신세대들은 자국이 (경제강국이면서도)미국의 지정학적인 말단에 불과한 것에 점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세계 강국으로서 공식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유럽의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교역과 금융의 강국으로서 세계적인 일등 국가이면서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아님에 무척 약 올라있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보통국가로서 역할하려고 함을 외교정책의 목표로 한다. 최근 들어 급속한 중국의 부상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일본이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중국은 전통적인 라이벌이자 과거의 적국이고 잠재적인 위협 국가이다. 더욱 강력한 중국이 등장하여 미국의 독보적인 지위를 약화시키면 미국은 일본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결속시킨다는 설명이다.

동북아지역의 흐름을 진지하게 살펴보면 지금 ‘한반도’는 정말로 외롭고 쓸쓸한 지경이다. 북한은 점점 더 중국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고 있고(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북한을 중국의 위성국가 정도로 말하고 있다), 미국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한국을 (군사적으로는)미일관계 하부구조로 편재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거나 일본이 강해지면 한민족은 늘 고통을 당했다는 것은 한반도 역사가 그것을 설명한다. 분단시대에 중국과 일본을 극복할 방안은 오직 미주동포의 역할이다. 미국의 힘으로 중국과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 한미 FTA는 중국과 일본에 앞서서 미국과 한국을 합하는 일이다. 한국의 정치권에 이러한 내용이 왜 씨도 안 먹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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