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아시안 VS 오리엔탈

2011-11-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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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은 (경제팀 기자)

미국에 와서 의아했던 것이 ‘오리엔탈’이 들어간 상호가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오리엔탈이란 ‘동쪽’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시아에 대한 서구 중심적 사고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다. 지도를 펼쳐놓고 봤을 때 유럽 열강의 시각에서는 아시아가 동쪽에 있어, 서구인이 아시아를 그렇게 지칭하게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아시아는 미국의 서쪽에 있다. 둥근 지구에서 동쪽, 서쪽을 나누는 기준이 서구인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문제는 이 단어에 내재된 불순
한 사상들이다.

‘나비부인’은 아시아에 대한 서구의 불순한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오페라다. 일본인 부인이 본국으로 떠난 미해군 남편을 기다리는데, 남편이 새 아내와 돌아온다. 자식이 없는 이들 부부에게 아들을 맡기고 결국 자살하는 일본인 부인은 서구가 바라는 ‘정복당하고 보호받기를 기다리다 스스로 희생하는’, 서구의 아시아에 대한 잘못된 환상과 인식을 드러낸 집약체다. 결국 미국인 남편 좋은 일만 해주다 사라진 편리한 존재로 일본 여인,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놓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실제 아시아의 존재와 본질은 외면하고 서구인의 머릿속에 상상한 이미지를 아시아에 덮어씌워 기정사실화해버린다는 것은 미국에 사는 소수민족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치명적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부조리를 보여준 실화도 있었다. 베이징 주재 프랑스 외교관이 본국으로 돌아간 후 중국인 부인을 위해 중국정부로 기밀을 빼내다 1970년대에 체포됐다. 그 부인이 사실은 남자에다가 중국 공산당 스파이였지만 10년이 넘도록 의심하지 못했던 것은 ‘아시아여성은 수줍음을 타기 때문에 자신의 몸은 보이지 않는다’는 서구 남성의 아시아에 대한 그릇된 환상 때문이었다. 아시아에 대한 잘못된 서구의 정의는 때때로 이처럼 황당하고 바른 사고를 방해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책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구 중심의 사고로 편리하게 아시아를 타자로 규정한 것을 비판한 것이 이미 30년 전이다. 최근 ‘포에버21’이 ‘오리엔탈 목걸이’를 내놓으면서 문제가 됐었다. ‘네이티브 아메리
칸’, ‘아시안’ 인형 펜던트에 ‘인디언’, ‘오리엔탈’ 이라는 이름을 붙여 목걸이를 판매했었기 때문이다. 아시안계 의류업체인 포에버21이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자사 상품에 사용,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타자로 인정해버린 셈이 됐다. 시장경쟁에서 상품개발과 디자인이 중요하겠지만 이름을 짓기 전에 좀 더 신중했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시안 기업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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